사람 잘 안 변한다. 대체로 바꿨으면 하는데 잘 바뀌지 않을 경우 사람 잘 안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내가 변하고 있다. 스스로를 평가할 때 난 용기가 있다. 보통의 경우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올 손해를 걱정해서 참고 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눈앞에 훤히 손해가 예상되는데도 감래 하겠다는 생각으로 할 말을 하고 마는 사람이 나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경우 뭐 그게 용기냐, 객기지. 할 수도 있다. 스스로 용기라고 명명하는 건 그 대부분이 나보다 모두를 위해 나서는 경우이기 때문에 스스로 용기라고 포장해주곤 한다.
요즘 부쩍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여느 때 같았으면 왜 그러느냐,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등등 확실하고 명확하게 팩트폭격을 하고 말 일들을 꿀꺽 삼키고 만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삼키는 게 아니라 당사자 앞에서 참고 혼자 독백처럼 하고 싶은 얘기를 주절주절 하거나 진절머리를 치면서 몸을 부르르 떨곤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스스로 왜 내가 이럴까? 하던 대로 살지 뭘 그렇게 몸을 사릴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프리랜서 직군을 관리하는 일이 내 업무의 하나다. 직장 내에서 자체 연수가 있었다. 그 연수는 프리랜서들도 받아야 하는 연수였다. 그래서 가능한 분은 함께 연수를 받도록 안내했고 예정된 시간에 연수를 받으러 왔어야 했다. 혹시 잊었을까 봐 몇 시간 전에 또 시간과 장소를 안내했었다. 그런데 참여하기로 한 분들 중 두 명이 참석을 안 했다. 연수 중에 "빨리 오세요, 연수가 시작되었어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계속 참여하지 않은 두 분이 오시는지 두리번거렸었다.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연수가 끝나고 확인해 보니 중간에 못 참석한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미리 사정 얘기를 하고 못 참석하게 되었다고 연락을 줬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연수 중간에 문자 하나 보내고 말았다. 그 후로도 만났었는데 아무 말이 없었다. 미리 연락을 못해서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 사후에라도 그 정도의 언급은 있었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상당히 못 마땅했는데도 꿀꺽 삼켰다.
또 다른 업무 중에 하나는 프리랜서분들이 준 정보를 바탕으로 업무를 한다. 그들이 오정보를 주거나 뒤늦은 정보를 주거나 하면 업무가 상당히 복잡해지고 안 해도 되는 일이 많이 파생된다.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갈피를 못 잡는 내용을 말하거나 불필요한 정보를 말해서 상당히 곤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된 밥에 코 빠트리듯이 결재를 올린 후에 때늦은 정보를 줘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게 만드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혼을 빼놓을 정도로 난감한 상황을 만드는 경우는 매번 거의 같은 사람이다. 매번 몸 둘 바를 몰라하고 미안하다고도 한다. 그런데 같은 일이 반복되곤 해서 할 말을 잊게 한다.
그들의 특징은 대체로 진심을 다해 위해주고 챙겨주면 스쳐 지나가듯 고마워한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금방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잘못했을 경우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면 그걸 못 참아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말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감래하고 만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은 무의식적으로 눈물이 나버렸다. 그들이 원인 제공하여 참고 다 받아주고 해도 결국은 허탈할 뿐이다.
무슨 마음인가 모르겠다. "안됩니다."라고 정확한 정보를 줬는데도 분명히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안될까요?"라고 물으면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는 건 그게 그들의 생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불편하고 힘들면 그들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경우라 거절을 못한다. 바른말을 참는 건 어차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말을 한다고 그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수고는 수고 대로 다 하고 고맙다는 말은커녕 바른말을 했을 경우 마치 내가 뭐 잘못한 사람처럼 대우받게 되는 걸 원치 않아서 참는다.
삼십 년을 함께 산 남편도 큰아이도 나를 향해 "앞뒤가 똑같다. 다 비치는 투명인간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듣는 건 내 마음을 숨기고 말고 하지 않는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흔히들 하는 말로 "목에 칼이 드리워져도 할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최근 들어할 말을 참기 시작했다. 늘 살아서 팔딱거리는 활어처럼 살았다. 그런 내가 좌판에 축 늘어진 다 죽은 생선처럼 변했다. 가늘고 길게 살아보려고 그런 걸까? 이미 다 죽은 생선인데 뭘 더 바랄 게 있다고 몸을 사리는 걸까?
'성숙'이 이런 걸까? 이유불문하고 참고 침묵하는 거? 영 나답지 못해서 낯설다. 할 말은 하고 살자. 할 말을 하고 사는 나를 누구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느냐? 지킬걸 안 지키는 자가 잘못이지 잘못이니 고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원망까지 감당할 수 없다고 침묵하는 건 나답지 못한 거가 맞다. 까짓, 그만한 걸 못 견딜 내가 아니지 않으냐? 할 일 하고, 할 말도 하고,, 당당하고 활기차게 살자. 나를 잃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