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Jul 18. 2024

귀한 건 귀가 느낀다.

공감, 감사

  조건 없이 진심으로 들어주는 건 상대가 내게 한 고귀한 행동이다. 결국 결혼을 왜 하는지도 모르고 결혼을 해서 지지고 볶으면서 산다. 그러다 힘이 빠지는 시기가 되면 누군가 옆에 있는 것 자체가 그냥 감사하다. 서로 익숙해서 편하기까지 한 그 존재가 알아서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건네주면 심하게 감동한다. 간혹 "얼마나 남았어?" 하면서도 끝까지 들어주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남편이다. 아직은 그렇게 늙었다고 하기는 그런 오십 대 중반을 넘긴 상태지만 같이한 시간이 깊어질수록 서로 더 많이 그 존재의 가치를 알아차릴 것 같다.  


  사람이 살다 보면 다 좋을 수 없다. 좀 슬픈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을 만나 결혼을 결심할 때부터 이미 남편의 단점을 봤었다. 장점도 많았지만 단점도 있었다. 그때 딱 이런 마음이었다. 나도 상대에게 다 좋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을 갖았었기에 결혼이 성사되었다. 고맙게도 남편은 매번 나를 향해 200% 마음에 들었다고 했었다. 그런 남편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얼마나 남았어?"라는 말을 하면서 내 얘기를 듣는다. 그래도 난 고마워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빨리 끝나길 바라면서 듣는 그가 밉지만은 않은 건 천생연분인 까닭일까?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건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일이다. 그런지 알면서도 100명이 넘는 톡방에서 나와버렸다. 도저히 끝까지 그 긴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을 같이했던 젊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상사에겐 진보처럼 행동했고 직급이 낮은 사람들에겐 보수 중에 골수 보수처럼 행동했다. 난생처음으로 단톡방에서 나오게 만든 사람의 글도 딱 그 사람이 생각나게 한 글이었다. 전날 소신 발언을 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어제 쓴 내 글도 장문이었는데 그 글의 세 배가 넘는 글을 내 이름을 부르면서 썼다. 전체적으로 본인의 공치사였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의 글에 댓을을 쓰는 건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톡에서 나오는 것도 강한 메시지가 되길 바라면서 나와버렸다. 근무 중에 얼핏 보고 말초적인 행동을 한 것이었다. 워낙 정신없이 바빴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퇴근 전에 꼭 결과물을 결재를 올리고 가겠노라는 목표를 갖고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런데 산책로를 걷는데 그때부터 '이게 맞나?, 이걸 어떻게 한담?' 하면서 스스로는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를 두 사람에게 물었다. "톡방으로 불러줄까?"라는 질문을  해왔다. 그러다가 또 다른 지인에게 물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호호호, 호호호"하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나가시자 제가 바로 부르려고 했어요. 그런데 속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그냥 있었어요. 제가 바로 부를게요. "라고 하면서 어제 내가 한 말이 다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 다독여 줬다. 덕분에 마음 앓이가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긴말이 필요 없다. 그냥 구체적인 언어의 나열 없이도 무척 나를 공감해주고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린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일을 하다가도 서로의 문제 해결을 위해 내 일처럼 온 마음을 다해 애써준다. 특히 매번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딱 중용의 자세를 취한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난감해하는 걸 금세 알아차리는 센스는 또 무엇인지, 참 닮고 싶고 오래 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또 헤어지기 싫고 늘 같이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 정년을 앞둔 그분은 누가 봐도 바른말만 할 것처럼 생겼다. 그런데 그분은 적어도 내겐 반전이다. 나를 속상하게 한 사람을 내 대신 내 앞에서 엄청 강도 높게 말해버린다. 물론 상대는 눈앞에 없다. 그래도 얼마나 후련한지 모른다. 그분의 매력이고 내가 헤어 나오지 못하는 포인트다.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참 많이 고마운 분이다.


고마운 분만 있는 게 아니다. 시시때때로 본인의 손익을 계산하고 손해는 절대 안 보려고 하고, 자잘한 이익을 취하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그런 사람도 얼마만큼은 듣는 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참 다양한 게 사람이구나.'를 실감하면서도 서로 어울려 산다. "쓸모없다고 버리면 남는 게 없다."라고 하는 인용구를 남편이 자주 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자주 들으니 또 생각이 난다. 결국 맑은 물에선 고기가 놀지 않는 건지, 세상을 살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고 또 그렇게 그렇게 어울려서 살아가게 된다.

  

간혹 밉기도 하고, 다시는 안 보고 싶기도 하고, 어쩌다 보면 단톡에서 나와버리게 하는 사람들과도 서로 섞여서 산다. 누군가는 습관적으로 부탁을 거절 못하는 나의 속성을 이용해서 마음 놓고 사용해 버리는 사람도 있고, 내게 한 없이 관대해서 어느 때고 내 일이라면 열일 젖혀놓고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사람도 있다.


어찌 되었든 서로 손을 내밀면 아무 때나 맞잡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내 말을 못 참아하면서 못 참겠다고 여기저기에 말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얼마나 남았어?" 하는 사람도 있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차려서 내 대신 욕해주는 사람도 있고, 운을 떼기도 전에 "호호호" 웃어주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내게도 내 말을 들어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끔씩 불편해하면서도 언제까지나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내 곁에 있다.  결국 나는 그 힘으로 산다.

작가의 이전글 우둔함의 미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