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소신

by young long

아직도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죽기 살기로 한다. 때론 불합리함에 격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직장 상사에게 같은 말을 했었다. 그랬더니 상사가 말했다" 그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주관적인 거 아니냐?"라고 , 그러자 "저 혼자만의 생각이면 그럴 수 있죠, 그러나 저희 직종 모두가 같은 말을 합니다."라고 답했다.


불합리하다는 그것의 업무량은 0.01%다. 그와 관련된 내 일이 된 건 99.99%다. 0.01을 막아낸 후 난 99.99를 기꺼이 한다. 그것도 죽기 살기로. 감당해야 하는 내 육신은 초주검이다. 그런데 야속한 삶은 나를 조롱하듯 또 다른 0.001을 가지고 나를 자극한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엔 "으악!" 소리 한 번 안 내고 소처럼 묵묵히 해내면 그냥 두지 0.001 도 못 되는 본인 일을 내게 떠 넘기려고 호시탐탐 나를 자극한다. 아직도 난 격하게 반응한다.



인간의 구조가 대동소이하다고 믿고 살았다. 그런데 생각이 좀 다르다는 걸 확인하곤 한다. 삶 전체는 대동소이할지 모르지만 각각의 구조는 다르다는 걸 확인한다. 많이 다르다. 누군가는 나를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서로 다른 걸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시공간 속에서 많이 또는 약간씩 다른 사람들끼리 맞춰가면서 피로감을 느끼면서 사는 게 생활인으로서의 모습들일 거다.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때론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하면 격하게 반응하거나 꿈틀거리는 나를 난 좋아한다. 가끔 불합리함에 무반응인 사람을 보면서 '한 번 사는 인생 천년만년 살 것처럼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아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나 또한 아닌걸 아니라고 말 못 하고 참을 때도 많아서 스스로에게 미안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하지만 다수의 목표를 위한 공감의 표시 정도는 해줘야 맞다고 생각한다. 침묵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색깔이 있다. 다 같을 순 없다. 다른 사람 중엔 시도 때도 없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고 평범할 땐 지극히 평범하다가 간헐적으로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두 경우 모두 수련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 죄 없이 그들로 인한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 우픈 일이지만 최근에 직장의 새로운 상사에게 말했다. 예측 가능한 분이어서 다행이다고.


세상사가 정답이 없다고는 하나, 정의로워야 할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고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수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진짜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늘 품고 살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중년을 넘고 있는 이 나이에 아직도 난 그러고 사는 것이 맞나 싶다. 육신은 늙어가는데 세상은 아직도 출렁인다.

이전 13화비에 젖은 꽃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