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무게

인생

by young long

오십 년 대생들은 간호사로 광부로 미싱공으로 시대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았다. 본인을 희생시켜서 부모형제를 살렸다. 그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많은 이들은 젊은 시절이라고 이름 부르기도 힘든 아주 어린 시절을, 일흔을 앞두거나 넘긴 지금도 그때의 본인을 애달파한다.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육십 년대생인 나는 무척 좋은 시절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사주팔자상에도 초년이 많이 힘들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 세대를 산 사람이 안 힘든 사람 있었겠냐고 다들 나 힘든 만큼은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뿐만 아니라 힘든 와중에도 또래들끼리의 추억과 날마다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 자연 속에서의 삶이 무척 좋았다.


초등학생이 중학생 되고 하듯이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부모가 되어 살고 있다. 환호하고 초집중하고 첫아이 엄마가 처음이듯이 둘째 아이 엄마도 처음이고 셋째 아이의 엄마도 처음이라 그때마다 선행학습이 되어서 조금은 익숙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늘 처음이라 부족하고 미안했다. 다들 성인이 되었지만 부모 그 자리가 참 많이 어렵다.


내가 부모 되어 사는 것도 어렵지만 우리 부모님도 살아계셨을 때도 물론 힘드셨겠지만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어느 곳에 선가 자식들을 바라보고 계시면서 까지도 참 힘드실 것 같다. 내가 낳은 자식들도 언 듯 '서로 좀 다르구나!'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좀 더 오래 살아서인지 무엇 때문인지 우리 부모님의 자식들인 우리 자매들도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자식들을 보면서 '나 잘 산 거 맞나?' 이런 생각을 최근에 처음으로 했다. 우리 부모님의 자식들인 우리 자매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부모님께서 '한평생 잘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시며 저세상길로 떠나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아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 못 이루는 시간들이 있다. '나' 그 '나'는 '나'가 되기까지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도 낳은 내 엄마가 계셨고, 그렇게 반복적인 위험을 감수하고 낳은 형제자매도 있고, 그들 속에서 무수히 많은 손길로 내가 되었다. 편리에 의해 무인도에서 홀로 나서 자란 나인 양 살 수 없다. 좀 버겁더라도 '나'는 부모님의 자식이고, 형제자매의 '나'인 것을 감당하고 살아야 한다.


과거의 나를 애처로워한다면 지금의 내가 잘해주면 된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과거의 나를 위해달라고 함성을 쳐봐도 치유되기 힘들다. 본인이 달래도 보고 손이 두 개이니 왼손이 오른손을 잡아주고 다음날은 오른손이 왼손을 잡아주고 그렇게 다독이며 살면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