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지인들
그림을 그리면 빛이 얼마나 피사체를 숨 쉬게 하는지 실감한다. 그림자는 평면을 입체감 있게 한다. 빛과 그림자는 결국 사물을 완성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글은 나를 정리하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나를 향한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눈이 되어주었다. 단지 글을 썼을 뿐인데 상대가 불쑥불쑥 본인들의 민낯을 드러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계속 그림자가 아니라는 걸 자인하도록 유도했을까? 그 이전에 왜 그들은 누구보다 나의 빛일 거라고 기대되었던 그들은 그림자로 자청해야만 했을까?
관심과 무관심 중 관심이 낫다고 안티도 관심의 한 모습이라고 했던가? 그럴 수 있다. 상대와의 마음의 거리가 어느 정도 있다면 안티까지도 관심이라고 느낄 것 같다. 그런데 공공연하게 또는 누가 봐도 쌍방이 각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계인데 스스로 그림자가 되어 내 글을 읽고 있다. 마치 내 글을 검열하듯이.
계속 그림자로 있었더라면 차라리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끝까지 그 위치를 고수하지 못한다. 각별한 관계인 이가 책을 썼다. 온통 축하했다. 그 후 내가 책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침묵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나를 알고 싶으면 나의 주변인들을 보면 된다고 했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나의 주변인들을 보고 안 보고는 그다음 문제다. 내가 내 주변인들을 보아버렸다. 콩깍지가 씐 상태로 평생을 살 수 있었는데 글을 쓴 통에 콩깍지는 확 벗겨지고 말았다.
세월 속에서 내 기쁨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자가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둔하기 짝이 없고 시도 때도 없이 해벌레하며 내 일처럼 기뻐하는 나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그 작았던 눈이 점점 커지는 건 아닌가 하며 놀라고 있다. 그들의 기쁜 일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식이 잘하면 마치 내 자식이 잘한 것 인 양 기뻐했고 자랑스러워까지 했다. 매번 내 일 같았다.
지금은 사람 참 많이 다르구나, 왜 그들은 스스로 그림자가 되어 있을까? 검열하려고? 모르는 게 약이라고 차라리 읽지도 말고 관심도 갖지 말기를 바란다. 응원은 바라지도 않는다. 철학자도 아니고 심리학자도 아니다. 그림자들의 마음을 끝까지 알아낼 자신이 없다.
사물은 태양이 존재하는 한 그림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굳이 그림자들로만 존재하길 원하지 않는다. 내게 태양인 그들이 원껏 함께 기뻐해주길 바란다. 응원을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함께 기뻐해주길 바라는 속 마음을 읽어 줄 날이 올까? 사람보다 그림자가 더 큰 건 단지 태양의 각도 탓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