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세월, 일일초
천둥 번개 무시무시한 폭우도 보고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기온도 체감하면서 여름을 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오늘은 소박하게 비가 내린다. 졸졸 뚜르르 똑똑 다 묘사하지 못하는 다양한 소리를 내는 건 아마도 바람의 영향이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간 내렸던 삼켜버릴 것 같은 폭우 이후 오늘처럼 잔잔하게 내리는 비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창밖의 정원에 핑크색 일일초가 하늘거리며 비를 맞고 있다. 얼마 전에 보도블록 사이에 쪼그맣게 싹이튼 일일초를 정원 가장자리에 줄 세워 심어뒀는데 그게 하나둘 피었다. 작년에 그들이 이름과 다르게 많은 시간을 창밖에서 예쁜 모습을 보여줬기에 기대를 안고 심었는데 여전히 예쁘게 피었다. 아직 크지 않은 상태라 온몸으로 비를 맞는 게 안쓰럽기까지 하다.
얼마 전에 정원을 관리하는 차원으로 예초기로 풀을 자르는 일이 있었다. 그때 여럿 잘렸다. 예초기로 풀을 자르는 분께 더위에 뭘 주문하면 싫어하실 것 같아서 바로 직전에 물을 듬북 줬다. 물 준 표시 때문에 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바람과는 달리 몇몇 개가 동강 잘리고 대만 남았다.
일일초는 정말 하루살이처럼 하루만 꽃피고 죽는다고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을까? '말이 씨된다.'는 속담이 있다. 말처럼 일이 일어나니 말조심하라는 의미의 속담일 거다. 일일초는 식물이라 예초기가 다가와도 도망갈 수도 없고 난감하겠지만 그 속담 한 마디로 나약하디 나약한 '나'란 사람은 매사 필요 이상의 조심을 한다. 일일초가 일일초이지만 하루만 살고 죽는 게 아닌 걸 확인하면서도 어떤 말이 실제로 일어나 버릴까 봐 전전긍긍한다. 일일초 보다 못한 좁쌀만 한 심장을 어디에 쓸지 참.
부지불식간에 의도치 않는 과실이 말도 못 하게 있으면서 가다가 하나씩 '아차!' 하는 건 또 무슨 상황인지, 세상사가 하두 예측불허의 일들이 많아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도 많지만 가까이 '나'라는 이에게 돋보기를 들이대면 만만치가 않다. 남탓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편함의 가장 밑바닥엔 '욕심'이라는 게 '그 모든 원인이 나요.' 하며 자리 잡고 있다.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는 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떻게 보일까를 의식해서 생긴다. 일생 착한 거에 집착하며 자기 점검을 해대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길 원하고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되길 원하는 그런 '욕심'이 삶의 원동력이기도 할 때가 있고 그로 인해 더 힘들고 그런 것 같다. 숨 쉬고 있는 한 물리칠 수 없는 일일 거라 생각한다.
오는 비 다 맞고, 할랑할랑 흔들거리며 나름 자태를 뽐내는 저 일일초가 차라리 단순해서 좋아 보인다. 자신이 일일초 인지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타고난 모습으로 어찌할 수 있는 선택권도 없이 살아 내는 게 차라리 부럽다. 일일초는 '하루만 살다 죽는다.'는 뜻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알고 보니 '날마다 새로운 꽃을 피워낸다.'는 의미의 이름이란다. 오해였었다. 사노라면 사람들끼리도 오해가 많다. 욕심도 오해도 또 다른 많은 요소들도 씨실과 날실처럼 그렇게 얽히고설켜서 한 사람의 인생사가 완성되는 것 같다. 그 결과물이 어떠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