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by young long

'나만 아니면 돼'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현실이기도 해서 참 슬픈 유행어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삭막하고 방어적인 말인가! 반대로 진짜 많이 힘들고 피하고 싶은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겪게 되면 그걸 또 극복해 나가는데 위안이 되기도 하다.


오늘 갑자기 그간 내가 힘들어했던 일들이 그나마 인간적인 거였고 극복할만한 일이었었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일도 어려운 일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면 기꺼이 해낸다. 그런데 분명히 업무 담당자가 따로 있는데 내 업무로 분류되고 그걸 아무 말 없이 하게 되면 계속 내 업무인 걸로 되고 타 분과 일인데 우리 분과일인 걸로 확산돼서 시작부터 단호해야 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 과정이 많이 힘들더라도.


최근에 계속 그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상사께 말했다. "제일 힘든 건 불합리함입니다."라고. 그 말끝에 상사분이 말했다. "아직 젊으시네요." 그 말이 여운이 오래 남았다. 불합리함쯤은 수없이 많이 겪었고 이미 그게 삶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근데 그게 맞나? 무엇을 위해서? 인생 자체를 사상누각으로 만들고 너도나도 그렇게 살면 그게 건강한 사회이며 그런 사회가 발전할 수 있으며 오래갈 수 있을까? 굳은살처럼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고 그걸 고쳐가며 살려고 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사는 게 그게 정상인가? 무엇을 위해? 먹고살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실적이나 상사의 독촉을 끝내 극복하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사례도 있다. 진실이나 정의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게 아닌 거를 변호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먹고사는 거 그거 정말 무시무시한 거다.


마치 유관순인양 잔다르크인양 목소리 제대로 내고 살았다. '하루를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자'를 실천하고 살았다. 뭔 배짱이었을까? 잃을걸 무서워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갖은 게 없어서 더 그럴 수 있었을까? 침묵의 대가로 부가 축적될 상이 아니었나?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걸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말 같지도 않은 불합리한 풍경이 하나둘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런 것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정년이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내일이든 남일이든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누구든 그걸 참아내는 게 능사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사회적응력이 좋은 사람이고 그걸 바로잡으려는 사람이 사회 부적응자인 것처럼 대우받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아니, 개선되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불량품이 나오면 사용하지 못한다. 불합리함을 알면서 그대로 가려고 하는 게 마치 사회생활의 정석처럼 굳어지는 건 불량품을 정품이라고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젊은이들이 불합리함을 참아내는 게 사회생활이라고 배우지 않길 바란다. 세상은 진실된 땀으로도 거뜬히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