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민낯

인간의 속성, 관계

by young long

모래자갈 시멘트 물 그렇게 모여 콘크리트가 된다. 콘크리트 나무 철근 또 무엇과 무엇들이 만나서 건물이 된다. 오해와 착각 그리고 합리화 등등이 만나 인생이 된다. 가까이에서 보면 안 보았으면 좋을 것 같은 것들이 보이고 멀리 보면 대체로 아름다워 보인다. 가까이서 오래 보고 살려면 알아서 셀프 이해해 버리고 오래 보고 싶지 않으면 피도 눈물도 없이 매정하게 차단해 버린다. 알고 보면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해석이 관계유지의 기간을 결정해 버린다.


남남이었던 사람이 결혼을 해서 백년해로한다는 건 성직자의 길보다 어느 면에서는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결혼은 일대 일이 아니라 가정과 또 다른 가정이 결합하여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게 결혼이다.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배우자의 부모다. 배우자의 부모는 왕왕 갈등의 씨앗이 되곤 한다. 알고 보면 부모도 부모지만 배우자의 역할이 갈등의 근원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배우자와는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 때문에 묻고 넘기고 그의 부모의 과오는 분명히 밝히려 든다. 본인 인생을 두 동강이 내지 않으려는 자구책이겠지만 결론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인 것이다.


살면 살수록 인생에서 끝까지 남는 친구는 배우자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 누구와도 오래 계속 관계유지를 하고 살게 되면 좋은 점 나쁜 점 다시 말해서 보고 싶지 않은 면면들을 알고 겪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럴 경우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관계가 친구인데 당장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해버리면 그걸 감래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법적 구속력을 갖은 배우자 말고는 옆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기가 쉽지 않다. 나쁘지 않게 별 기대 없이 살 경우를 다 '친구'라고 한다면 그런 친구야 많다. 그러나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끝까지 믿어주고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내편인 친구는 귀하고 많지 않다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비겁한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미안할 정도의 비겁한 행동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 진실은 하얀색인데 상사가 까만색이 진실이라고 했을 때 "아닙니다. 하얀색입니다."이렇게 말하지 못하거나 침묵해 버리는 경우까지 있다. 계속 직장을 다니기 위한 자구책이다. 친구는 물론이고 혈육이나 배우자한테 까지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그야말로 슬픈 일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들어주고 믿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많은 그런 관계 속에서 살고 싶다.


내게 그런 분이 계시다. 같은 일을 하다가 퇴직한 분인데 잘 들어주고 어떠한 경우도 날 믿어주고 내편이 되어주고 불합리한 일 앞에서 나보다 더 많이 대신 화를 내 주신 감사한 분이 계시다. 나도 퇴직하면 두 손 꼭 잡고 같이 먹고 싶은 것 먹고 보고 싶은 것 보러 다닐 생각이다. 얼마 전에도 불편을 감수하고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가며 만나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노력이 필요 없다. 그냥 믿으면 된다. 그러면 상대가 실수를 할지언정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품어주게 되는 것 같다. 알고 보면 시중에 떠도는 그 흔한 사랑이란 게 이런 관계가 아닌가 한다.


삶은 유한하다. 그 유한한 삶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호흡하며 산다는 건 참 많이 귀한 인연이다. 그런 인연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길 원한다. 흔히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이런 말들을 한다. 그 말에는 완벽하지 않고 실수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악의가 아닌 의도하지 않은 실수는 포용해 주며 살자. 어느 의사왈, 인간은 의약품(알코올)을 그렇게 마신다고 했다. 풀어야 할 일이 있으면 의약품(^^)을 기대서라도 풀고 서로가 원하는 잊히지 않고 생각만 해도 편안한 사람으로 서로 기대며 살자.


알고 보면 나도 부족하디 부족한 인간이다. 언젠가 말했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허영심으로 부족함을 노출시키고 있다고. 때론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도 한다. 부족함을 자각하며 스스로에게 더욱 성숙해질 것을 주문한다. 적어도 내 속과 겉은 악의가 없다.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그러면 계속 실수도 할 수 있다. 내 부족함이 내 민낯이다. 일방적으로 이해를 구해서 미안하다. 시답지 않은 글을 쓰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나를 정면으로 보고 산다. 오늘도. 이해를 받고 하는 과정 속에서 언젠가는 따뜻하고 포근한 '나'라는 집이 지어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