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이다.
직장에서 만난 분께서 스스로 의도치 않은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자.
어느 점집을 찾았는데 내년까지 구설수가 있으니 늘 조심하라고 했다며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 달라는 SOS를 청하곤 했다. 그때마다 농담처럼 "현명한 영미가 알려줄게요." 하며 객관화시켜서 헤쳐나갈 방법을 알려주곤 했다.
해결책을 듣고는 "영미샘이 없었으면 어쩔뻔했냐!"며 고마워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지 않고 직언을 해버린다.
본인을 걱정하고 위하는 진심을 알아차릴만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마인드였다.
시기마다 부모로서 인생 선배로서 이 세상 누구보다 너희들을 사랑한다.
엄마가 아니면 이걸 누가 바로잡겠느냐.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잔소리를 해야 했고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쏟아낼 때도 '사랑' 내 속엔 그것이 있다며 위안 삼곤 했다. 그때마다 신이 날 과대평가 했다고 아이 셋을 맡길 때 합당한 지혜도 함께 줬어야 맞지 않냐고 부족함을 절절히 실감하며 살았다. '저처럼 말고 더 현명한 방법을 알려주세요!' 딱히 응답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그 모양 그 꼴이다.
물론 어릴 때처럼 잦은 빈도의 상황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래도 지금도 시기에 맞는 엄마의 역할이 있다.
힘이 되어주고 싶고 지름길을 알려주고도 싶고 간절한 마음은 여전하다.
다 컸는데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론과 실제의 괴리는 때마다 존재한다.
부모가 바라는 이상향은 스스로 잘하는 자식이다.
그것이 안 될 경우 부모의 조력을 믿고 따르는 자식이다.
어릴 땐 그나마 통하는 말이다.
다 큰 자식은 또 다르다.
'사랑', '경험' 그런 단어가 떠오르지도 않는다.
'조언'그거 내가 싫다.
'아직도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면서도 또 시작하면 누에고추에 실 풀리듯 그게 답인양 해댄다.
게으름이 발동했는지 벌써부터 맛있는 거 먹고 "맛있다!" 아름다운 경치 보고 "좋구나!" 이러고 살고 싶다.
나의 함량은 여전히 미달인데 다가오는 질문은 여전히 보인다.
해답도 질문과 함께 보이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은 배우라는 거겠지만 딱히 그 방법도 모른다.
아는 만큼만 보이면 다행이겠지만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사는 게 참 힘들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현명함이 나이에 비례하지 않다는 거 그게 현실이다.
문제라면 개선책을 찾지 못했다는 거다.
아직도 여전히 모른 채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