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도 안 닮은 내 딸

딸 그리고 엄마

by young long

엄마 49제에 나란히 선 네 딸들이 절을 하기 직전에 육십이 넘은 바로 위 언니가 처음으로 내 발을 봤는지 무지외반증 직전의 발 모양을 보고 "네발은 엄마발과 똑 같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난 외모는 물론이고 내면까지도 엄마를 빼닮았다. 그 깊이는 많이 부족하지만 많이 닮았다. 딱 두 가지는 안 닮았다. 욕쟁이할멈 수준의 요란함 그리고 싫은 것도 싫다, 좋은 것도 싫다. 그렇게 표현하셔서 속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하는 이상한 심리가 닮지 않은 부분이다.


많은 부분을 엄마를 닮았다. 얼굴은 물론이고 초저녁잠이 많은 것, 코를 골고 자는 것, 은근히 용기 있는 점, 둔하기 그지없이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 은혜를 갚아야 다리 뻗고 자는 것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닮았다. 엄마의 면면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밝은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앞에서나 자매들 앞에서 난 늘 같은 말을 했다. 엄마를 존경한다고 우리 딸이 이순신장군을 존경하듯이 난 우리 엄마를 존경한다.


이심전심 딱 그 마음이었다. 엄마랑 단둘이 있으면 많은 말을 안 해도 많은 말을 한 것 같고 매번 항상 늘 도란도란 다정다감하게 소곤거렸다. 엄마와 별말을 안 했는데도 다른 자매들은 "엄마는 영미한테만 속마음을 말씀하신다."라고 말하곤 했다. 엄마 앞에서 "엄마, 이러지 마세요." 그런 표현은 거의 안 했다. 대신 딱 두 가지 부탁을 드렸었다. "막내에게 막내가 어려울 때 뭘 좀 주세요." 또 한 가지는 "엄마는 엄마니까 언니들에게 마음속 말씀을 하셔도 됩니다. 참지 말고 하세요."였다. 요란한 욕쟁이 할멈 같은 우리 엄마는 정작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은 늘 참고 사셨다.


참고 사신 우리 엄마가 늘 애처로웠다. 할머니 아버지 엄마 네 자매 그 구성원 중에 가장 고생하시고 희생하신 분은 몇만 번을 생각해도 우리 엄마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라서 자식보다 더 고생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나보다 어린 나이에 허리가 비틀어지듯이 굽어버리셨다. 당신을 단 한 번도 돌보지 않고 고된 노동을 쉼 없이 하셔서 그렇게 되셨다. 아픈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극진히 돌보셨다. 자식들 앞에서 눈물바람 하기 싫어서 자식들이 객지로 떠날 때면 새벽 같이 호미 들고 밭일을 나가버리셨다. 가족 구성원 중에 엄마를 향해 원망을 하거나 무슨 안 좋은 말을 하면 엄마 이상으로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누군가 네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표면적으로는 직업을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우리 엄마 호강시켜 드리는 거요.'였다. 늘 발등에 불 끄며 사느라고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낳은 둘째가 초등학생 때 어버이날 편지지에 "엄마, 호강시켜 드릴게요."라고 써서 줬다. 한 자릿수 나이일 때라 호호호 웃으면서 '호강이란 단어를 알까?'하고 넘겼었는데 내가 우리 엄마를 향해 품었던 마음을 내가 낳은 아이에게 듣다니 속으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내가 우리 엄마 딸이듯이 내게도 딸이 있다. 내 딸은 태어날 때 날 닮았었다. 내면은 몰라도 외모는 나와 내 남편은 많이 다르다. 그런데 태어날 땐 날 닮았던 딸이 커서는 내 남편인 딸아이의 아빠를 닮아 버렸다. 아들 둘은 혈액형이 나와 같은데 딸아이는 본인 아빠와 같다. 관심사도 혈액형 따라가는 것 같았다. 다 큰 딸아이의 면면을 보고 또 봐도 나와 닮은 구석이 없다. 닮고 싶거나 닮기 싫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안 닮았을까? 수준이다.


우리 딸은 십 대 때까지는 그야말로 에너자이저였다. 의욕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넘치고 활기찼다. 못 하는 것도 없었다. 어른인 내가 학원에서 삼 개월을 공부해서 딴 자격증을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본인 아빠에게 딱 일주일을 배워서 땄다. 뭐든 잘하는데 또 뭐든 하겠다고 했다. 동학년 친구들이나 보호자 그리고 선생님들한테 면목이 없을 정도로 뭐든 다 하겠다고 했다. 매번 "네, 엄마!" 하는 딸이 사랑스러웠는데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본인의 어릴 적 모습은 물론이고 그녀의 엄마인 날 닮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디에 꽁꽁 숨기고 있는지 언제쯤 보여줄 건지 많이 궁금하다. 일반 대학보다 더 많이 학교를 다녀야 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과외도 수없이 많이 했었고 집 앞에 있는 대형마트 속에 있는 떡볶이집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떡볶이집 사장님을 베프라고 하며 훗날 결혼을 하면 청첩장을 드릴 거라고 했었다. 그곳이 폐업을 하게 되어 그만두었는데 우리 딸아이에게 부모님께 말씀드리라면서 "훌륭한 자녀를 본인의 일터로 보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려라."라고 하셨단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내심 놀랐었다. 내가 결혼한다고 직장을 퇴직하던 날 우리 회사 전무님께서 내게 했던 말과 그분이 똑같은 말을 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고 엄마만 계셔서 전무님께서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어머님께 이렇게 훌륭한 자녀를 우리 회사에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호랑이'란 별명을 가지신 분이 그런 말랑말랑한 말씀을 하셔서 놀라면서도 울림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 아르바이트 사장님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었다니 속으로 감사하면서도 '내 딸이 맞나 보네!^^'라는 생각을 했다.


일고백 일차임이 될지라도 난 내 딸에게 간곡하게 바란다. 엄마는 우리 딸과 많이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기왕 말한 김에 평생 베프이고 싶다고! 우리 엄마와 내가 이심전심이듯이 우리 딸과도 그랬으면 좋겠다. 워낙 어려서부터 내 인생의 구십구 점 구라고 우겨대서 미안하다. 그 와중에도 내가 욕쟁이 할멈 같은 우리 엄마의 깊은 마음을 읽어내듯이 우리 딸도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든 엄마였었더라도 엄마를 읽어내는 마음의 눈이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