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셋인 엄마의 행복

칭찬, 감사

by young long

지금쯤 육아의 정점에 서있는 부모님들은 그 끝이 언제일까?, 끝이 있기는 할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등등 갖가지 생각들을 접었다 폈다 하곤 할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기만 하지는 않다. 찰나의 행복 그리고 긴 고단한 시간 이게 반복되는 게 육아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가는 과정 중이라 '육아'라는 단어가 과거가 되었고 연핑크 정도로 미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생각으로 선배 부모분들을 무지하게 부러워했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를 낳아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그때까지는 아이 셋의 엄마인 입장에서는 전쟁 같았다.


지금도 아이 셋이거나 더 많은 아이를 기르고 있는 부모를 볼 때 일방적으로 애정이 가고 동료의식이 생기곤 한다. 평시 때 보다 더 힘든 일이 생길 땐 '신이 저를 과대평가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미천한 내가 어떻게 한 명도 두 명도 아닌 세명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물론 버거워서도 그러기도 했었고 한편으로는 더 현명하고 지혜롭지 못한 엄마라는 한계를 자각할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간혹 어르신들을 뵐 때 그들 중 어떤 분은 다시 젊을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이를 더 낳고 싶다고 하신 분들도 있었다. 본인들이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아이 낳아 기른 일이라면서. 어쩌면 아이 셋을 한 손으로는 잡고 또 업고 앞세워 걸리고 그렇게 줄렁줄렁 걸어가는 내게 격려라고 하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잔열이 남아서였을까, 육아가 추억? 아직은. 이런 생각이었고 한참은 현실감을 못 느끼고 믿기 힘들어했었다. 본격적인 육아가 공식적으로 끝이라는 사실이. 그러나 지금은 점점 나와의 만남이 스쳐가는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계속성을 띈 만남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가끔 "엄마, 잘 계시지요?" "별일 없으시지요?" 등등의 전화를 받는다. 마치 노인네가 다된 것도 같고, '뭘, 전화는~, 무소식이 희소식인데~'라는 삼키는 말을 하곤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제 다정한 둘째에게 전화를 받았다. 재학 중인 아이는 공부가 뭔지 장시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다가 진짜 오래간만에 전화를 해왔다. 주저리주저리 수다쟁이들처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간만의 통화라서 인지 무슨 말 끝에 칭찬을 한 보따리 안겨주었다. "우리가 클 때는 몰랐는데 엄마는 진짜 착하다, 엄마는 진짜 속세의 떼가 묻지 않았다 등등" 참 뭘 하고 집 밖에서 살았기에 '속세의 떼'라는 단어를 알아버렸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고마웠다.


아이들이 클 때는 누구네 집은 닭 한 마리를 못 다 먹고 반마리는 냉동실에 넣어두곤 한다는 말을 들을 땐 다른 나라 말처럼 들었었다. 아주 1차원적인 식생활부터 아이 셋은 남다르다. "요새 세상에 한 명 키우기도 힘들다는데 영미는 뭔 생각으로 셋을 낳았는지 모르겠다."라고 일삼아서 걱정하시던 우리 엄마. 그러나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키워냈다. 뭐가 되어서도 아니다 아이 셋은 그냥 존재 자체로 행복하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내게도 이런 시간이 왔다는 거 그게 팩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