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곱하기 이

상황, 도리, 입장

by young long

"너희들은 안 늙을 것 같지?" 우리들의 어르신들이 어린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삼십 언저리에 애 낳고 눈 몇 번 깜박거렸더니 그새 곱하기 이를 한 나이가 다 되었다.

딱히 이 나이가 싫거나 다시 그 젊은 나이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뭘 어째보지도 못했는데 그때 그 시절의 나와 상황이 영 달라져 있다.

그때는 어린아이들을 막 낳았거나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기르고 있었다.

그런 또래들과 서로 어울려서 상부상조도 하고 생활음들을 공유하곤 하며 살았다.


특별히 과장된 설들을 말하는 것 같지 않은데 나의 처지와 많이 다른, 다른 나라에서나 있을법한 말들을 듣게 되었다. 그때마다 많이 아쉬웠지만 '그런가 보구나, 그럴 수 있지.' 등등의 자기 합리화 작업을 해가며 살았었다.

그런데 그때는 이웃 수혜자들의 사례들을 들으며 별천지 같은 말들을 동경하며 부러움 마저도 숨겨가며 살았었지만 지금은 곧 뭔가를 제공해야 하는 날들만 계속 펼쳐질 것 같은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자식이었을 때와 내가 부모였을 때의 입장과 도리가 많이 다르다.

우리 전 세대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위해 먹이는 것 가르치는 것이 큰 사명이었다.

지금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그때와 별 다름이 없을 것 같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많이 다르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그 상황에서는 애쓰며 했지만,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해야 할 일들을 소홀히 한다거나 그러지도 않았는데 막상 뭔가 크게 도움이 되고 싶은 나이의 부모가 되어 있으니 크게 줄 게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며느리로서 주변 다른 이웃집 며느리들과 많이 다른 처지를 확인할 땐 그냥 부러움을 숨기며 넘길 수 있었는데 혹여나도 내 며느리가 나와 다름없는 마음을 갖게 될 것만 같아 속상하다.


삼십 대의 내가 동전 앞면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동전 뒷면과 같은 것을 동전 하나가 앞뒷면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갖은 게 없으니 무언가로 포장이라도 해야 하나 궁리를 해야 되는 처지다.

한 번도 가보지도 못한 귀동냥으로 들은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가 독립을 한다,'는 미국 얘기를 해야 하나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무슨 설을 풀어야 하나 싶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느꼈었다. 선배보다 후배가 낫다는 것을. 후배는 좀 부족해도 '그럴 수 있지~'가 용납된다. 삼십 대일 때는 그러나 저러나 투정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때다. 곱하기 이를 해버리면 그럴 수 없다.


내가 겪은 삼십 대가 엊그제 같은 데다 그때 내가 원했던 바람이 워낙 생생하여 잊히질 않아서 통 대안이 없다. 다시 말해서 내 삼십 대가 원했던 부모상에 지금 내가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버리는 것이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내가 자식이었을 때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훗날 내가 부모가 되면 자식들에게 원 없이 잘해줄 것을 욕심내버린 죄가 큰 죄라면 죄다. 한 계단 한 계단 아주 세상 성실하게 때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고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었건만 거울에 보이는 확실한 나이테가 그려진 모습뿐 더 줄 것이 없는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느꼈던 상대적인 궁핍을 내 자식들이 부모인 내게 느낄까 봐 걱정된다. 늙어가니 별걱정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