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노화
면역력이 약해지면 없었던 질환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알레르기 현상이 주로 발생한다. 햇빛, 꽃게, 꽃가루 등 피부알레르기 현상이 일어나고 그 후유증으로 피부가 급 노화되어 버린다. 요즘은 눈 테두리 염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다. 다양한 해결책을 써봤지만 딱히 효과를 못 봤다. 여전히 텁텁하고 숫자를 계속 사용하는 업무를 하는데 여간 어려움이 많은 게 아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슬그머니 늙어가는 게 아니라 대놓고 노화가 찾아오고 있음을 자각하는 중이다.
현인들은 말한다. 뭘 자꾸 버리라고. 애초에 별로 갖은것도 없었는데 갖은 거라고는 몸뚱이뿐인 것 같은데 그것마저 성치 않은 걸 날마다 확인하는 중인데 그래도 뭘 버려야만 할까? 누군가는 질투나 열등감 등이 삶의 연료였었다고도 말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그런 건 애초에 별로 없었다. 대신 인정욕구가 내면에 꽉 들어차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 잘 지내고 싶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어느 땐 성장기에 어떤 결핍이 있었기에 난 자꾸 다 늙어서까지 칭찬에 목을 맬까 의문을 갖곤 했다.
또 하나는 궁핍한 초년을 보내고도 '돈'만을 쫓지도 않고 부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지도 않는 걸 의문스럽게 생각한다. 살면서 어떤 시기를 지나면서 없어진 게 있다. 이십 대 중반을 지나고부터 기억력이 현저히 나빠짐을 느꼈었다. 필요한 기억력은 물론이고 너무 시시콜콜한 것 까지도 아주 세밀하게 기억이 났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자 생활기억, 지식기억 모든 기억력이 확 낮아졌다. 그래서 얻은 건 성격상 서운한 걸 오래 기억했었는데 그 증상이 싹 사라져 버렸다. 뒤끝이 있었는데 사라진 것이다. 기억력저하가 원인인지 결혼으로 안정감을 찾아서 불필요한 것에 연연하지 않아서인지 그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나쁜 습관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글을 쓴다고 고해성사하듯이 뭔 묻지 않은 자백(?)을 이렇게 하는지 입가에 미소가 싹튼다. 아이들에게 선 사죄를 구하는 게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아이들 성장기에 엄마인 난 상당한 조급증이 있었다. 시골에서 십 년을 기르다가 대도시로 이사를 왔다. 단지 아이들의 학군을 쫓아서 온 거다. 대도시로 왔더니 말로만 듣던 선행학습이 범접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목적이 공부였고 목표가 좋은 대학 보내기였으니 선행학습이 전무했던 학부모로서 발등에 불을 보고 앗 뜨거워를 아니할 수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
꾸준히 아이들 정서에 좋을 거라 생각해서 애 셋 모두 다섯 살 때부터 미술 음악 등 예체능에 집중했었다. 교과와 관련된 공부는 따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터라 그때는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 표준 빨리빨리 심리를 초과한 빨리빨리 심리가 급발동 했었다. 말할 수 없는 조급증은 많이 지난 지금도 기억할 만큼이었었다. 아주 미스터리 한 일이다. 왜냐하면 내 성장기엔 날마다 엄마에게 느리다는 타박을 듣고 자랐는데 내가 엄마가 되자 과거를 잊고 다른 사람처럼 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조급증은 시기가 지나자 자동으로 사라졌다.
모든 게 한 때지 뭘 그렇게 용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버려라!' 그걸 그렇게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진다. 때가 되면 다 사라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데 말이다. 약동하는 시기에 있을법한 모든 것들은 그것 나름의 생동감이 있다. 하다못해 질투나 열등감 까지도 휘발유나 경유처럼 에너지원이 되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지금은 사라져 가는 그 모든 것들을 부여잡고 느리게 사라져 주길 원하며 살고 있다. 특히 건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