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이십 대 때의 직장생활은 그때가 그립기까지 한 걸 보면 상당히 좋았었다.
부서원들 간에 애틋함과 혈육 같은 끈끈함이 있었다.
결혼을 하여 경단녀 생활을 근 십오 년이 넘게 하고 다시 취업을 해서 십오 년째다.
하루 네 시간 근무를 십 년이 넘게 하고 여덟 시간 근무를 한지 몇 년이 안되었다.
일을 다시 시작할 땐 아이들을 기르면서 직장 생활하기 아주 안성맞춤이란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생각과는 달리 일의 내용이 난이도가 있었고 독립적이었으며 그래서 상당히 매력을 느꼈다.
타 직종에서 일을 하다가 우리 직종으로 이직을 한 사람이 한 달을 하고 그만뒀다는 소리를 들었다.
타 시도에서도 우리 직종의 퇴사율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일의 내용이 어렵다는 반증이다.
일은 고난도여서 매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입사부터 직종별 업무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시작을 해서인지 타 직종 업무를 떠넘김을 당하는 경우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그로 인한 피로도가 형언하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단시간 근무일 땐 더했다.
농담처럼 우리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는 대표를 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니 많이 힘드실 것 같아요."라고 했다.
딱히 그래서라기보다는 상대의 무례함에 많이 힘들었었다.
다 줄 수는 없었는지 일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며 좋아하는 걸 시기라도 하듯이 때마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났었다. 아마도 보통 사람들이었으면 몇 번은 그만뒀을법한 일들이 있었다.
그래도 같은 공간은 아니지만 같은 직종의 동료들이 있어서 큰 힘이 되었다.
무슨 일을 하던 힘듦이 존재할 것이다.
가끔씩 스스로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할 만큼 힘들었었다.
거의가 상대의 무례함이 그 원인이었다.
같은 경우에 직면했을 때 아닌 걸 알면서도 그냥 받아들였거나 운 나쁘게 내게만 더 무례한 성향의 상대가 나타났거나 했을 것이다. 난 또 워낙 매번 온몸으로 스트레스로 받아들였다.
십오 년간 많이 힘들었었다.
바다의 파도가 연상되듯이 일상이 그랬다.
살아있기에 그렇게 역동적이었을 거라 생각하곤 했다.
인간이 묘한 게 센 파도가 덮쳐오면 살려고 아우성이고 날마다 잔잔하면 또 무료하다고 투정이다.
재취업을 하고 십 년쯤 되었겠거니 했는데 십오 년째다.
뭐라도 좋으니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했던 때가 있었다.
운 좋게도 매력적인 직업을 갖았고 그로 인해 많은 아픔도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에 설 때마다 안타깝게도 생각나는 말이 있었다.
'산 좋고 물 좋고 경치까지 좋을 순 없다.' 다 좋을 순 없는 게 세상이치라는 걸 체감했다.
지난 시간은 훌쩍 가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으로의 시간은 지난 시간을 애써 미화시킬 거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남은 직장생활에게 부탁한다. 훗날 미화시킬 수 있는 원재료가 되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