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장 씨앗박사' 주재순
“꼬들배기는 씨가 잔게 흙에다 섞어가고 허쳐. 지푸라기로 덮어 노믄 금방 나.”
“욕심부리지 말고 드믄드믄 놔. 상추씨는 배게 숨궈도 무시씨(무씨)는 안돼야.”
“도라지는 높은 산에 눈 남아있을 때 숨궈야 혀. 3월 그믐. 안 얼어죽어. 땅이 뜨거우믄 나가지고 죽어버려.”
종일 앉아 있어도 심심하지 않겠다. 전북 진안장 두어 평 남직한 주재순(71) 할머니 씨앗 가게.
“설명서 볼 것 없어. 내 말만 들어.”
강연장이 따로 없다. 서서 훑어보던 사람도 자리에 앉게 된다. 할머니 ‘입심’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바닥에 널려진 씨앗들을 보게 된다.
“땅 풀리면 심궈. 5월 되믄 자네 키보다 더 커. 7월에 꽃이 펴. 8월에 여물어 가고 볶아서 까먹으믄 맛나.”
젊은 아낙은 마당 텃밭에 심을 상추씨를 사러 왔다가 해바라기씨에도 관심을 보인다. ‘할머니’ ‘할머니’ 하며, 이것저것 손으로 가리키며 물어본다. 할머니 말씀 속에 이미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폈다. 상추밭이 푸르고 무가 큼지막하고 오이가 열렸다. 여름이, 가을이 여물었다.
할머니 좌판에 널려 있는 씨앗은 두 가지다. 종묘회사에서 나온 ‘봉다리 씨앗’과 할머니가 직접 받아낸 ‘떠 주는 씨앗’. 포장지 설명서보다 할머니 말에 귀 기울일 이유가 있다.
“노인들이 읽을 수나 있간디. 소용없어 내 말 들어야제. 여기는 고랭지 상한지대여. 5월까지 서리가 내리는디 설명서대로 했다간 다 죽어불제. 내 말만 들으면 돼.”
할머니가 씨앗 파는 방식 중에 재밌는 게 있다. 그 하나는 씨앗을 팔면 다른 씨앗을 신문지 조각에 싸서 덤으로 조금씩 주는 것.
“덕 쌓는 거여. 순 길러 묵다 보믄 내 생각 나겄제.”
또 하나는 손님이 원하면 씨앗봉지를 터 500원어치도 1000원어치도 파는 것.
“돌라는 대로 줘야지. 식구 많은 사람은 많이 심고 적은 사람은 적게 심고. 망구 혼자 산디 돌라믄 줘야제.”
자연의 순리가 깃들어 있는 말씀이다.
“봄에는 씨앗 팔아서 좋고 겨울에는 얘기 나눠서 좋아.”
따뜻한 봄·여름·가을에는 씨앗 파느라 정신이 없다. 씨앗이 나가지 않는 겨울에는 한약재 몇 가지 가져다 놓고 할머니들과 주섬주섬 얘기 나누는 재미로 장에 나온다.
남은 식구들의 희망이었던 ‘무시씨’
“점심도 같이 묵고 옷도 사주고 아들이 다 챙겨준 게 좋아.”
할머니는 막내아들과 함께 오일장에 다닌다. 어머니는 씨앗 팔고 아들은 약재를 파는 무진장 오일장의 명물 모자(母子)다. 진안장, 장수장, 산서장 가는 날은 아들이 사는 전주에서 자고 장계장 가는 날은 할머니가 사는 장계에서 잔다.
“나만 고생해도 된디 저까지 고생시켜 미안하지. 밥숟가락 한번 제대로 못 물려줬어.”
4월에 막내아들을 낳고 동짓달에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업고 씨앗 바구니를 머리에 이었다. 저 아래 담양장까지도 가서 팔아보고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씨앗을 팔았다. 그렇게 한 종지에 20원씩 파는 무시씨, 배추씨가 남은 식구들의 희망이었다.
“나는 고마울 뿐이여. 훌륭히 가정들 건사하고 있는게.”
모두 잘 자라 줘 좋단다. 열매 같은 손주들도 안겨 줬단다. 그 징한 고생이 하나도 아깝지 않단다. 눈물로 키웠던 막내가 옆에 ‘딱’ 있어 주니 금상첨화란다. 항상 같이 다녀서 그런지 엄마 생각하는 게 유별나단다.
“옛날엔 힘들었어. 차도 귀한디 차장이 짐 많다고 떠밀어내고…. 애들 밥 해줘야 한디…. 많이 울었제. 지금은 질로 좋아. 아들이 다 해 준게 힘 하나도 안들어. 재미져.”
“인자 봄인갑네”
“나는 작은 게 좋아. 요 씨앗들이 다 작잖어.”
할머니는 씨앗 한 줌을 쥐어 내보이며 “얼마나 고와!” 하신다.
“요 한 줌이믄 식구들 배불리 먹어. 요것 뿌리믄 농사 시작된 거여.”
아직 찬 바람 치는 장터 한 귀퉁이, 할머니 씨앗 좌판을 햇볕이 들여다본다.
“요렇게 햇볕 좋고 날 따수워야 나. 흙이 보슬보슬해져 갖고 간지럼도 피우고, 비도 와 촉촉해지믄 나제. 지 혼자 시상에 나온 게 있남.”
할머니 말씀을 듣고 있는 씨앗들. 이제 막 출발지점에 서서 또랑또랑 온 힘을 모으고들 있다.
“씨앗 팔리는 것 본게 인자 봄인갑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