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승주읍 감나무 가로수길
주홍빛 무리가 어디론가 날아가는 듯하다. 대낮에 전구불을 밝혔다.
‘마른 풀들이 각각의 색깔로 눕고 사라지는’ 가을 끝자락, 순천 승주 조계산으로 드는 길은 둥글둥글한 것들이 찬란하다. 읍내에서 신창, 칠성, 죽림, 괴목마을로 가는 선암사길, 감나무 가로수가 ‘대목’이다. 붉은색 계통의 빛깔을 모다 내보여준다.
수선한 이파리 다 떨쳤다. 이파리 수만큼이나 열린 감. 깊은 골, 늦가을의 환대.
이 감나무는 주렁주렁, 저 감나무는 조랑조랑. 가지가지 대롱대롱. 작고 야문 것들이 반짝반짝 곱다.
‘똘감’이다. 신창마을 최복심(86) 할머니는 “수두룩 수두룩 열리는 감”이라고 한다. “우들은 쳐다만 보는 감, 새들이 먹는 감. 감이 작아서 (껍질을) 까들못해.” 홍시로도, 곶감으로도 잘 먹지 않는 감. 온전히 까치밥으로, 붉은머리오목눈이, 직박구리, 쏙독새, 파랑새밥으로 다 내어주는 감.
똘감은 ‘씨감’이다. “요것 있어야 월해감(월하시)이 나고 대봉이 돼. 감삐따구(감씨)가 좋은게 접이 잘돼.” 단감, 납작감, 둥시감도 ‘원조감’인 똘감에서 나왔다. 똘감을 ‘대목(어미나무)’으로 해야 ‘감쪽같이’ 먹감이 되고 띠바리감이 된다. ‘감쪽같다’는 말이 감나무 접붙이기에서 나왔다. 감나무는 접붙이기를 하고 한 해만 지나면 원래 한 나무였던 것처럼 잘 자란다. ‘감접같다’가 ‘감쩝같다’로 소리가 변한 뒤 ‘감쪽같다’가 됐다.
똘감나무는 돌감나무, 산감나무, 뾰주리 감나무라고도 불린다. 뾰주리감은 길쭉한 둥근 모양새인데 이곳에서는 “꼬치감(고추감)이라고도 한디 얘도 똘감”이다.
전라북도 산림환경연구소 송상호 팀장은 “우리 모두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 것처럼 디오스퓌로스 까키 툰브(Diospyros kaki Thunb, 감나무 학명)라고 명명된 감나무 주인공을 아느냐”고 묻는다. 세상 감나무들의 뿌리를 묻는 것. 800여 종의 감나무 가운데 ‘감나무 학명’을 지닌 주인공은 돌감나무. 돌감나무 학명은 디오스퓌로스 카키 툰브 바르. 실베스트리스 마키노(Diospyros kaki Thunb var. sylvestris Makino). 디오스퓌로스(Diospyros)는 ‘과일의 신’이라는 뜻. 생물학자 린네가 붙였다. 카키(kaki)는 ‘감’, 툰브(Thunb)는 식물학자 툰베리, 바르(var)는 변종(variety)이라는 뜻이다. 실레스트리스 마키노(sylvestris Makino)는 변종의 이름과 변종 이름을 붙인 사람 이름. 일본 식물학자 마키노(Makino)가 ‘숲’(sylvestri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돌감나무가 산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것을 알려준다.
마을에서 똘감나무로 접붙여 얻는 월해감 하나를 얻었다. 진한 붉은 빛 홍시, 입에 넣는다. “달착하제.” 이래서 곶감으로 만든다. “월해감이 곶감 맹그는 것이고 딴 감은 삐지기(반쪽 쪼개 말린 감)나 하제.” 순천 승주 곶감 브랜드명이 ‘꿀곶감’일 수밖에 없겠다.
올해 감농사는 대풍년. 그래서 걱정이다. 농촌현실은 감도 쌀도 배추도 흉년, 풍년 가릴 것 없이 한숨이다. 2023년 농업분야 예산은 전체 예산 가운데 겨우 2.7%이다. 농자재값만 치솟는다. 노인뿐인 농촌에 노인일자리도 줄었다. 농촌은 ‘벼랑 끝’에 와있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감이 몽신 열려도 일만 되고 돈은 안 나오고. 천불나는 세상이여.”
선암사로 드는 감나무 가로수길, 무수히 열린 붉은 감들이 심장 같다. 대롱대롱, 목숨줄 같다.
붉은 주먹 같다. 거리로 나선 시위대다. 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