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그렇게 예중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제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저의 50년 인생은 잔잔한 바다 위를 유유히 항해하는 돛단배와 같았습니다. 기선의 강한 추진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춰 서지도 흔들리지도 않으며 앞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지요.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부모님이 계셨고 낙방의 경험 없이 한번에 대학에 들어갔으며, 졸업과 동시에 취직에도 성공했습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하느라 청춘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기는 해도 제 또래들보다 일찍 아이를 키우고 보니 빨리 결혼한 것도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평온하게 흘러가던 제 인생에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딸 아이가 예술계 특목중학교에 덜컥 붙어버린 겁니다. 딸이 시험에 합격한 일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딸의 특목중 입학은 우리 부부의 인생 계획에 아예 없던 일이었습니다.
동네 무용학원에서 일주일에 세 번, 취미로 발레를 배우고 있었던 딸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전공 반에 들어가 예중 입시를 준비해 보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5학년이면 중등 과정을 선행시켜주는 영어나 수학 학원을 알아봐야 할 시기인데 갑자기 발레를 전공하겠다고? 예체능 전공의 길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저는 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딸의 발레 사랑이 남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안 된다고 하면 며칠 조르다 말겠지’라며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한테 졸라봐야 말이 안 통할 것으로 생각했는지 아빠를 끈질기게 구워삶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딸 아이의 간절함은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고, 남편은 딸과 저에게 세 가지 중대 발표를 했습니다.
첫째, 도전할 거라면 후회 없이 다 해 보기
딸 아이의 노력뿐만 아니라 입시 준비에 들어가는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남편의 통 큰 결정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체능의 ‘예’ 자도 모르는 남편은 대폭 오르는 학원비만 감당하면 될 것이라는 순진한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사실, 이과 엔지니어 출신인 남편이 예체능, 그것도 발레 전공 시스템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했지요.
둘째, 집에서 가까운 예술중학교에 지원하기
수도권에는 예술중학교가 세 곳이 있는데, 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합니다. 남편의 두 번째 조건은 서열보다 통학 거리를 지원의 기준으로 삼자는것이었습니다.
셋째, 불합격하면 발레를 취미로만 배우기
남편다운 결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예쁜 딸이라도 열정만으로 없는 재능에 시간과 수고와 돈을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남편은 딸이 저렇게 원하는데기회라도 한번 줘 보자는 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술중학교 입학시험이 딸의 재능을 가늠해 보는 평가의장이 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딸 아이의 합격에 낙관적이지 않았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발레 전공 자체를 반대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작은 가능성을확인하는 순간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전문적인 교육에 들어간 딸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꾸준히 콩쿨에 나가며 예중 입시를 준비한 아이들을 제치고 ‘합격’이라는 좁은 문에 들어가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계절이 여섯 번 바뀌는 동안 정확히 말하면, 1년 5개월 동안 우리 부부의 일상은 딸 아이의 예술중학교 입시 준비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식단을 조절해서 체중을관리하고 늦게 시작한 만큼 많은 시간을 발레 연습에 할애했으며, 발레 동작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근력을 키우기 위해 따로 운동 센터도 다녔습니다. 종일 연습을 하다 보니 밤이면 남편은 만사를 제쳐두고 딸의 다리를 마사지해 주었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엄마인 제 몫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초등학생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시간이었는데, 딸 아이는 신기할 정도로 불평 한마디 없이 모든 일정을 소화해냈습니다.
합격자 발표 날 아침 10시가 되었습니다. 저의 대학교 합격자 발표 이후로 이렇게 떨려보긴 처음이었습니다.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딸의 수험번호를 입력했습니다. 결과는 합격!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창이 뜨자마자, 저도 모르게 환호가 터져 나와 순간적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제 사정을 알고 있던 옆자리 동료가 저를 힐긋 보더니 물었습니다.
“붙었어?”
“어. 대박.”
이렇게 저는 예술중학교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정말 아무런 준비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