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이너이자 팀 리더로서 느낀 경험의 가치에 대하여
주말의 루틴이 있다.
아침엔 산책을 하고, 광화문에서 커피를 마시고, 교보문고에서 책을 뒤적인다.
어느 주말도 다르지 않았지만, 그날은 '경험의 멸종'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외치는 책이라니, 반쯤은 고개를 갸웃했고, 반쯤은 ‘그래도 중요하지’라는 생각으로 책을 들고 나왔다. 요즘은 뭐든 '빠르고 편한 것'이 기준이 되었고, 아날로그는 점점 더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으니까.
책장을 넘기면서, 예상과 달리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나는 디자이너다. 디자인은 단지 ‘보이는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디자인은 곧 ‘이해의 기술’이라 믿는다.
사용자를 이해하고, 타인의 입장을 상상하며, 점 하나도 허투루 찍지 않기 위해 고민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런 이해의 출처가 점점 변하고 있다.
과거엔 몸으로 부딪히며 겪은 직접적인 경험이 밑거름이 되었지만, 이제는 미디어를 통해 소비된 간접 경험이 주를 이룬다. 커뮤니티에 떠도는 이야기, 알고리즘이 가져다주는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가 진짜 경험하고 있는 건 얼마나 될까.
회사에서 팀을 이끄는 역할을 맡으며, 진짜 경험의 중요성을 더 절감하게 된다.
효율만을 좇는 사회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나는 여러 번의 실수와 사과를 통해, 팀워크가 단순히 업무 분담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예전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율해가며 만들어가는 것이 진짜 협업이라고 믿는다.
그 안에서 나는 매일 새롭게 배운다. 동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 내가 보지 못한 관점을 발견하고, 그게 또 나의 디자인 언어로 확장되기도 한다.
디지털은 분명 효율적이고 강력한 도구다.
우리는 그 안에서 수많은 간접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 간의 경험이다.
디자인도 결국 사람을 향하는 일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기다릴 줄 아는 감각이 사라진다면
디자인도, 팀워크도, 삶도 건조해질 것이다.
우리는 알고리즘 속에서 무수히 소비하고 클릭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는 그 틀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열망이 존재한다.
알고리즘 너머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 믿으며, 결국 또 알고리즘 안에서 클릭을 반복한다.
알고 있지만, 벗어날 수 없는 그 흐름이 조금 씁쓸하다.
하지만 진짜 감정은 우연히 마주친 책 한 권, 길에서 들려온 낯선 대화,
예상하지 못한 질문 앞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우연이라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우연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나는 다양한 상황에 부딪히며 ‘경험’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