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걸 얕보지 않기

David Shrigley

by 휘파람휘
출처 : https://ronnierocket.com/2012/06/23/im-dead-by-david-shrigley/



1. 아주 긴 엄지손가락, 그리고 두 발로 선 강아지


10년도 더 된 기억이다.
런던에서 열렸던 어느 아트페어,
프리즈였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날 나는 잊히지 않는 작업을 봤다.

사람 손 모양의 조각인데, 엄지손가락이 이상하리만큼 길었다.
그 옆엔 강아지 한 마리가 두 발로 서 있었다.
작은 팻말을 들고 있었는데,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I’M DEAD.


진지하게 보면 웃기고,
웃고 나면 좀 이상하고,
이상하다 보면 또 생각하게 되는 그런 작업이었다.


2. 대충 그린 것 같은데,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그게 David Shrigley의 세계였다.
비뚤비뚤한 선, 허술한 구조, 뼈있는 농담.

어설프게 보이지만 정확한 문장.

어른의 언어로 쓴 유치한 낙서.
나는 그게 좋았다.


3. 어디서든 Shrigley의 흔적이 보이면.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면 그 도시에서 보이는 Shrigley의 엽서나 책을 하나씩 사오기 시작했다.
파리의 작은 디자인 서점에서 엽서를 발견한 날,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작은 책을 발견한 한.
그걸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건 기념품이라기보다는 내가 있는 장소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났다는 증거를 모으는 마음이었다.


4. 나의 감각을 말하는 가장 좋은 문장 하나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유머로 삶을 비틀고,
그 비틀림으로 세상을 통과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예술을 좋아한다.
무거운 걸 가볍게, 복잡한 걸 단순하게,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가벼운 걸 얕보지 않기. 웃긴 걸 무시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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