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보다 취향이 있었다

디자이너가 미식에서 배운 것들

by 휘파람휘

1. 궁금했던 디테일들


교보문고에서 ‘미식가의 디테일’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표지에 그려진 붉은 찻잔이 눈에 오래 남았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내가 평소에 궁금해했던 것들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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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화이트 vs 코르타도,
내추럴 와인 vs 유기농 와인,
펜네 vs 지티 vs 리가토니.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차이일지 몰라도 나는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아무도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아서 그냥 넘겨왔던 질문들.
그 디테일의 차이를 알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2. 주말 아침엔 카푸치노, 평일엔 진한 라떼


나는 누구나 그렇듯 맛있는 걸 좋아한다.

처음 보는 메뉴가 있으면 일단 먹어보는 편이고, 괜찮다고 느낀 건 꼭 다시 찾아 먹는다.
그렇게 하나씩,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이 생겨났다.


주말 아침엔 카푸치노가 좋다.

거품 위로 올라오는 고소한 향과 온기가 좋다.
평일엔 진한 라떼 한 잔으로 정신을 깨운다.
녹차보다는 말차를 훨씬 더 좋아하고,
파스타면은 얇은 링귀니보다는 도톰한 스투루치가 좋다.
샐러드엔 레몬즙이 살짝 뿌려졌으면 좋겠고,
차이브를 송송 썰어 넣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는 생각보다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3. 디자이너가 훈련하는 감각의 근육


디자인을 한다는 건 결국 구분 짓기다.
비슷한 두 색의 온도를 구분하고,
두 폰트 사이의 여백을 조율하고,
형태의 밀도를 눈으로 감지하는 일.

‘미식가의 디테일’을 읽으며 느꼈다.
그건 디자이너로서 매일같이 반복하는 감각 훈련과 닮아 있었다.


플랫화이트와 라떼의 차이를 알게 된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무거나 마시지 않게 되었다.
이왕 마시는 거면 내가 좋아하는 걸,
내게 더 잘 맞는 걸 고르게 된다.

‘선택’은 곧 ‘인식’이고,
인식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




4. 디테일을 안다는 것, 삶을 더 잘 사는 방법


우리는 종종 ‘큰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항상 아주 작은 차이에서 시작됐다.

딱 그 만큼 덜 익은 토마토의 식감,
그날따라 조금 더 뭉글하게 끓인 리소토의 농도.

그런 작은 차이들이 모여 하루의 기분이 되고, 나만의 리듬이 된다.

나는 디자이너이기 전에,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즐기고 싶은 사람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조금 더 기분 좋게,
내 삶을 선택하고 싶다.


취향은 결국, 삶을 나답게 고르는 연습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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