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 한달의 몰입 그리고 리디자인

한 달 동안 카드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

by 바이블

이건 초고 그대로 올립니다. 퇴고 없이, 말 그대로 생닭 같은 글입니다.

다듬으면 더 보기 좋아질 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은 정리된 글보다 초고에서 더 잘 살아있더라고요.

최근 단편과 장편을 쓰면서 느낀 건 하나였습니다.

글은 잘 쓰는 것보다, 먼저 살아 있어야 한다고 책 어딘가에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정리보다 감정을 우선으로 두고 싶었습니다.


왜 49장이었을까?

49장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타로 마스터의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49장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아주 가벼운 말이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나 같은 사람도 타로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정도의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이유 없이 시작했습니다.
정말 생각 없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묻고 싶습니다.

'왜 굳이 타로였을까?'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다

겉으로는 창작이라고 말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사람을 깊이 공감하고 싶었습니다.

감정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서 무뎌진 상태였습니다.

당시에는 꽤 힘들었고, 우울도 깊었습니다.

그때 스스로 내린 결론이 하나였습니다.

'이걸 버티려면, 창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이 제 첫 창작이라고 봐도 됩니다.

창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이걸 위해서 제가 어떠한 학원을 다니거나 무언가 배우거나 한 것이 아니었으니깐요.


상담과 공감사이 그리고 모순

원래도 사람을 분석하는 일을 했지만, 돌아보니 겉만 보고 있었습니다.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그리고 받아보면서 느낀 건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심연까지 솔직하기 어렵다.

그리고 상담이라는 것도 포장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듣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대화들.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편집된 고민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상담은 언제 진짜이고, 언제 연기일까.

연기일까?

진심일까?

네가 하고 싶은 말 따로 있으면서.

얼굴에 그게 보였습니다.


규칙을 만들다

그래서 저는 방식 하나를 정했습니다.

1) 감정은 당일에 쓴다

다음 날이 되면 감정이 변질됩니다. 그래서 무조건 그날 완성했습니다.

2) 완성도를 보지 않는다

그림이 이상해도 상관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감정의 정확도였습니다.

제 목적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3) 루틴을 유지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방식. 그렇게 한 달 동안 49장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2~3장씩 그리기도 했습니다.


외부의 시선 "쟤 이상해"

이 시기의 저는 밖에서 보기엔 꽤 이상했을 겁니다.

"쟤 이상해."
"정신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타로에 빠지지 마."

이런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이름, 모습 잠깐의 스쳐갔던 사람 또한 전부 다 기억합니다. 전 기억력이 좋습니다.

분하다기 보단 솔직히 말하면, 조금 미안했습니다.

이 직업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의 저는 멈출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마주하기

한 달 후, 리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이게 더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마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픔, 트라우마, 고민 그걸 다시 꺼내야 했습니다.

피하고 싶은 것들을 일부러 끄집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건 단순했습니다.

회피는 편하지만 남는다.

마주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정리된다.


공감은 ‘집중’이다

결국 하나로 정리됐습니다. 공감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는 결국 이것 하나였습니다.

최선을 다한 집중.


공감하는 척은 쉽습니다.
좋은 말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듣는 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상담은 능력이 아니라, 컨디션과 관리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오라클에 대한 생각

이 과정에서 타로와 오라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기 미래도 모르는 사람이 남의 미래를 말한다는 것.

처음엔 기만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도 됐습니다.

사람은 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정리된 감정을 원한다는 것.

그래서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타로는 미래를 맞히는 게 아니라 지금의 상태를 비추는 도구에 가깝다.


창작으로 남은 것

이 작업을 통해 제가 얻은 건 결과물이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기록하는 방법

마주하는 태도

균형과 조율의 중요성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기준

그리고 하나 더. 완벽해질 수 없다는 사실

우리는 결국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고, 그걸 없앨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조율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카드는 사람을 구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의존하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상태를 마주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말보다

조금 더 정직한 감각을 담고 싶습니다.

도구라도 정직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정직을 지키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계속 벼랑 끝에 몰아넣어야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아프지만 진행했습니다.

그런 말이 이더군요.

창작은 누군가의 감정을 찌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창작을 하면서 창작하는 사람도 아파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
고통을 주었다면, 너도 고통스러워야 하고
슬픔을 주었다면, 너도 슬퍼야 하고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고 싶으면, 그만큼 너도 깨달아야 한다고


정리된 글보다 덜 다듬어진 글이 더 진짜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도 완벽하게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때의 감정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초보 창작가가

이전 18화함정, 구속, 마차,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