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오라클이 말하는 나

진심을 찾으러 갔다가, 모순을 보았다

by 바이블

내가 오라클 카드를 만들며 생각한 것들


카드를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다.
상징을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의미를 붙이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상담’이라는 세계를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타로를 보는 사람들, 상담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언가를 간절히 묻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나는 그 세계를 가까이에서 보며 한 가지 감정을 자주 느꼈다.

실망.


상담을 받는 사람은 상담사의 뒷면을 모른다.
눈앞에서는 빛나 보일 수 있다.

말은 부드럽고, 통찰은 깊어 보이고, 마치 인생을 잘 건너온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삶 뒤편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둠이 있을 수 있다.


아이를 방치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폭력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주변을 시기하고 공격하며 타인의 불행 위에서 안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담자의 상황을 진심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질투와 열등감, 혹은 자기 욕망을 섞어
‘조언’이라는 말로 내뱉는 사람일 수도 있다.


집 안은 무너져 있는데
자기 몸 하나 뉘일 자리만 간신히 치워 두고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물론 가난한 것이 문제는 아니다.
불행한 삶이 문제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고,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내담자가 돈을 내고 기대하는 것은
적어도 자기 삶을 함부로 투사하지 않는 태도,
조금 더 맑은 시선,
조금 더 깊은 통찰이다.


우리는 상담을 ‘사람’에게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잠시라도 보여주는
정직한 시선과 해석의 힘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삶이 괜찮아지고 싶어서 찾아간 곳에서
오히려 더 탁한 마음을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 타로카드를 만들면서 이 세계의 모순을 많이 느꼈다.

진심을 찾기 위해 진심을 찾아가지만,
그 진심을 오래 유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자기 안의 결핍을 남의 삶에 뿌리지 않고,
상대의 불안을 자기 생계의 먹이로 삼지 않고,
타인의 의존을 키워 돈으로 바꾸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나는 교육 쪽에서도 비슷한 실망을 느낀 적이 있다.
겉으로는 학생의 성장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학생이 취업하든 말든
그저 수업만 무사히 굴러가면 되는 구조.

누구도 아주 노골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들 안다.


적당한 온도,
적당한 격려,
적당한 거리.
너무 진심도 아니고, 너무 무관심도 아닌
그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오래 살아남는 방식이라는 걸.


어쩌면 상담도 비슷할지 모른다.

돈을 벌기 위해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고,
기분을 맞춰 주고, 계속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것.

정말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불안과 기대를 반복 구매하게 만드는 방식.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서는 사람을 낫게 만드는 것보다
계속 부족하게 느끼게 만드는 쪽이
더 수익이 되는 건 아닐까.


그래야 다시 오니까.
그래야 또 묻게 되니까.
그래야 관계가 끝나지 않으니까.


학생도, 내담자도
가끔은 한 사람으로 보이기보다
유지되어야 하는 수요처럼 다뤄진다.


나는 이 지점에서 자꾸 멈춰 서게 된다.

정말 나빠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말 이용해야만 돈을 벌 수 있을까.
정말 상대의 결핍을 붙잡고 흔들어야
이 세계에서 오래갈 수 있을까.


오라클 카드를 만들면서
나는 오히려 카드의 의미보다

카드를 다루는 사람의 윤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오라클은 미래를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거울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자기 얼굴조차 보지 않으려 한다면
그 거울은 결국 남을 비추는 척하며
남을 왜곡하게 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오라클은
누군가를 의존하게 만드는 카드가 아니다.

계속 찾아오게 만드는 카드도 아니다.
좋은 말만 골라서 파는 카드도 아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듣기 좋은 위로보다
불편하더라도 정직한 감각에 가까운 것이다.

상대를 붙잡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삶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문장.

상대의 약함을 소비하는 상징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마음을 똑바로 보게 만드는 상징.

어쩌면 내가 카드를 만드는 이유는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덜 속이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남을 속이지 않고,
나를 속이지 않고,
빛처럼 보이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작은 탐욕을 경계하기 위해.

나는 여전히 진심을 믿고 싶다.


진심은 흔하지 않고, 지속하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더 귀하다.


오라클도 마찬가지다.

카드 한 장의 문장보다 그 문장을 쓰는 사람의 태도가 먼저다.

결국 사람이 만든 상징은 그 사람의 윤리를 닮는다.

그래서 나는 예쁜 카드보다 먼저 부끄럽지 않은 카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붙잡는 카드가 아니라
누군가를 자기 삶으로 돌려보내는 카드.

그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오라클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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