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오라클
“도망치고 싶어요.”
“어디로 도망치고 싶은데요?”
“죽으면 편해지지 않을까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습관이 되면, 삶은 조금씩 무너진다.
기한을 맞추지 못한 일, 불편한 관계, 미뤄둔 약속.
그 끝에는 늘 지쳐버린 내가 남는다.
“도망쳐선 안 돼. 불효자야.”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도망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계속 참고, 계속 견디다 보면 판단력은 흐려지고 마음은 피폐해진다.
그때 깨달았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지 말자. 인정하자.
“그래, 가끔은 쉬어도 돼. 네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잠시 멈춰도 괜찮아.”
그 말 하나가 나를 살렸다.
무조건 이겨내야 한다고 다그치던 내면은
사실, 오래전부터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은 어느 날 이렇게 속삭였다.
“그래도 아직 살고 있잖아. 내 안에서.”
도망의 끝에서 만난 질문
타로카드를 만든다는 이유로 나는 도망쳤다.
그 끝에 내가 찾던 답이 있을까.
나는 낙천적이고 순진했다.
그 순수함 때문에 무시당했고,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들에게 상처도 받았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
“그거 해봤는데 별로야, 하지 마.”
“너 사회생활 걱정된다.”
처음엔 휘둘렸지만, 곧 생각했다.
‘왜 저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지?’
누군가의 분노를 대신 받아주는 사람으로 남느니,
그들의 방향과 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
관계가 끊어져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웨이트가 아닌, 나만의 오라클
성인이 될 때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2022년부터 한 달에 7권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내가 수없이 고민하던 문제를 대신 설명해주었다.
저자에게 직접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결국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그 답이 ‘타로카드 제작’이었다.
‘타로를 자주 보는 이유, 어쩌면 타로를 좋아했기 때문 아닐까?’
처음엔 나도 웨이트 타로를 만들려 했다.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땄지만, 그건 내 언어가 아니었다.
유튜브에서 수많은 제너럴 타로 리딩을 보며 깨달았다.
“꾸며진 게 아니라, 진짜를 그리고 싶다.”
여기서 말한 ‘꾸며짐’은 그들이 꾸며낸다는 뜻이 아니라
카드속 한 화자가 되어 마음속 깊이 ‘울림’ ‘통증’ ‘날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림으로 돌아온 치유의 시간
그 시기엔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
외로웠지만, 동시에 치유되었다.
그림을 그리며 오래 묻어두었던 잘못을 떠올리고,
스스로 반성했다.
“잊고 있었는데, 나도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구나.”
타로는 점이 아니라,
나를 마주하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욕망의 변질에 대하여
나는 나 자신을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모두 욕망으로 움직인다.
순수한 소망조차 욕망이 되면, 언젠가 변질된다.
욕망은 무언가를 얻고 싶은 에너지다.
그 에너지가 누군가의 상처 위에 세워질 때,
결국 그 욕망은 타인을 해친다.
“결국엔, 어떤 형태로든 욕망은 변질되더라.”
한 장의 카드가 태어나다
그 모든 감정과 반성이
결국 한 장의 오라클 카드로 바뀌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
외로움, 후회, 회복.
그 모든 내면의 조각들을
그림으로 시각화했다.
‘바이블 타로 오라클’은
신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마음을 해석하려는 시도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카드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내면의 공간”이었다.
신의 언어 : 깨달음, 통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