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에서 보완하고자 한 다짐
‘바이블 타로 오라클’의 첫 시제품은 텀블벅에서 시작됐다. 한 달간의 작업으로 기획부터 스토리, 일러스트,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냈다. 밤을 새워 하루에 카드 한 장씩 완성했다.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그건 하루를 통째로 갈아 넣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창작은 항상 오해에서 시작된다]
처음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건 마녀타로 아니야?”, “기독교 콘셉트를 이용한 거 아냐?”, “창작이라기보단 모순이잖아.” 비판이라기보다 조롱에 가까웠다.
전혀 종교적 맥락을 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 쉽게 단정했다. 그들은 내 ‘기획’을 읽지 않았고, 나의 ‘진심’을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창작을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이기보다, 논쟁거리로 소비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작품이 세상에 나가는 순간, 의미의 주인은 나 혼자가 아니다.”
사람은 각자의 경험으로 해석한다. 창작이란,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오해 속에서 자기 철학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그래도 응원은 있었다. “이 카드의 스토리가 나랑 닮았어요.”, “당신의 세계관을 응원합니다.” 그 몇 마디가 나를 다시 펜 앞으로 불러왔다.
[오타 하나가 남긴 값비싼 수업료]
1차 제품은 완벽하지 않았다. 카드 문구에서 오타가 두 번 났다. 작은 실수였지만,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인쇄를 맡긴 업체는 이름만 크고, 실제 제작은 중국 하청이었다.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표기에도 ‘중국 제작’ 문구를 넣어야 했다. 중국에서 제작한다는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진행 도중 안내받게 되어 알게 된 사실이라 조금 당황했다.
처음엔 생각과 다르게 나온 작업물에 화가 나기도 했다. “이건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니잖아.” 하지만 결국 모든 책임은 내게 있었다. 확인하지 않은 것도, 믿어버린 것도, 결국 나였다. 그 한 번의 실수는 나에게 “창작자는 계약서보다 현장을 먼저 봐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 이후부터는 모든 제작 과정을 직접 관리했다. CMYK 값 하나, 코팅 재질 하나까지 눈으로 확인했다. 작품은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완성은 디테일로 결정된다.
[팀보다 혼자였기에 얻은 것들]
카드뿐만 아니라 다이어리, 책갈피, 스티커, 스프레드 천, 컵까지 모두 한 달 안에 혼자서 제작했다. 견적을 비교하고, 시안을 수정하고, 직접 포장을 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처음으로 ‘일의 무게’를 온전히 느꼈다. 만약 처음부터 팀이었다면 이 모든 과정을 이렇게 깊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 대신 해줬다면, ‘감사함’도 ‘고통’도 반쪽이었을 것이다.
전시 기회도 생겼다. 나를 좋아해주는 팬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 유지되진 못했다. 그건 어쩌면 당연했다. ‘창작’은 한순간의 유행이 아니라, 꾸준히 불을 지켜야 하는 일이니까. 그래도 의미는 남았다. “없어졌다고 해서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완결이었다. 1차의 끝은 새로운 문을 여는 예고장이었다.
[1차의 끝, 2차의 시작]
이번 개정판은 그 모든 시행착오를 토대로 다시 시작하는 작업이다. 1차의 미완성은 부족함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속도보다 호흡을 택했다. 제작 공정, 품질, 소재, 상징 체계 — 모든 걸 다시 뜯어보고 새롭게 세웠다. 그때의 나는 단지 “만드는 사람”이었다면, 이제의 나는 “의미를 완성하는 사람”이다.
1차 시제품은 작품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알게 해준 실험’이었다. 그리고 이번 2차 개정판은, 그 실험 속에서 태어난 진짜 나의 언어다.
“완벽은 없었다. 대신, 진심이 있었다. 그리고 진심은 언제나 두 번째 버전에서 더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