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신중한 유리가슴

by 나른한 뱃살


냥이는 유리가슴이란다.


그만큼

신중하다.

조심한다.

경계한다.

함부로 들이대지 않는다.

그게 처음에는 우스웠는데

지금은 참 좋다.


어릴 때는 겁이 없는 것

그건 센 것을 의미했다.

무서워도 무서운 티를 내면 안 된다.

울고 싶어도 울면 안 된다.


열정

도전

쟁취

안 되면 되게 하라

"들이대 들이대"

"드루와 드루와"

...


이런 말들은

서슴없는 것

적극적으로 돌진하는 것

겁없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런 말들이

묘한 경계선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열정이 누군가에는 부담이 되고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는 피곤함이 되고

나의 들이댐과 무대뽀 정신은

누군가에는 고통이 되기도 한다.


조직 생활을 오래 하면서

이런 말들을 앞세워

자신의 욕심과 무모함을 포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신중

경계

삼가함

두려워함

...

이런 말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도 냥이들 덕분인 건가?





유교 경전에는 군자와 소인을 비교하는 말이 많다.

군자가 훌륭한 사람이라면

소인은 그렇지 못한 못난 사람일 거다.

내가 좋아하는 군자와 소인의 차이에 대한 구절은

<중용>에 있다.


<중용> 서장에는

'계신공구(戒愼恐懼)'라는 말이 나온다.

"경계하고 삼가며 조심하고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 네 글자야말로

마음 공부의 요체이고

이를 통해 중(中)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계신공구'는 군자의 삶의 태도이다.


반면 <중용> 2장에는

'소인이무기탄(小人而無忌憚也)'이란 말이 있다.

소인은 기탄없이 행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조심하거나 어려워함 없이 제멋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무기탄'은 소인의 삶의 태도이다.


물론 때로 과감하고 저돌적이어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은

나 자신을 경계하고 삼가며

함부로 혹은 제멋대로 하지 않고

조심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




우리 딸구네에서

가장 유리가슴은 딸님이다.

신중하다 못해 숨어버리는 녀석이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그랬던 걸까?


새로운 것을 유독 경계하고 조심한다.

손님이 오면 그 분이 갈 때까지

코빼기를 볼 수 없다.

한번 놀란 것엔 어찌나 피하고 도망다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들이대는 것도 딸님이다.

언니들에게도 겁없이 달려들어

상석을 빼앗는 것이 일쑤고

나와 내 아내 사이에 쏙 들어와

앉거나 눕는 것은 늘 이녀석이다.

잠자리에서 우리 부부 배 위를

마구 걸어다니는 놈도 이녀석이다.

(집사 배 위를 걸어다닌다는 건

냥이가 집사를 안전하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딸님이는 신뢰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는가 보다.

신뢰하는 사이라면

가끔 제멋대로 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걸까?


믿음은

신중한 유리가슴도

담대하게 해주나 보다.


tempImage6YnxLx.heic 소파 위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 재롱떠는 딸님이


이전 11화제11화 냥이의 균형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