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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언니 Jul 18. 2023

그냥 쓰는 게 아니제

내  첫 글쓰기는 아빠에게 쓴 편지였다.


툭하면 싸우는 부모님이 힘겨웠던 열여섯 소녀는 불현듯 자신이 뭔가 바꿀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밥솥과 그릇이 날아다니던 깊은 밤, 책상에 앉아 편지를 써 내려갔다.

간절한 마음이 그들에게 닿길 바라며 구구절절 써 내려간 편지에는 그동안의 힘듦과 원망이, 그다음은 가족에 대한 희망이 써졌다.


부디, 나의 진심이 전해지길...


이른 아침, 교복을 챙겨 입고 현관에 놓인 아빠의 구두를 슬쩍 내려다본다. 

직접 전해줄 용기는 없다.

키는 부쩍 자라 아빠보다 한 뼘이나 더 컸지만, 아직 어렸고 아빠가 무서웠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심했다.

아빠의 구두 안에 심스레 편지를 넣어두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교했다.



"내일부터 우리는 행복할 거야. 더 이상 미워하고 싸우지 않아도 돼..."



집에 돌아온 나를 반긴 건, 잔뜩 화가 난 아빠였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다. 당황스러웠다.

편지라는 걸 생전 처음 받아 봤다는 그는, 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며, 건방지다고 했다.

머리 큰 자식의 치기라고 느꼈던 것일까?

아님, 부모의 지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야속한 자식이 돼버린 걸까?

진심은 전달되지 않은 채,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내 첫 글쓰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도 쓰지 않는 삶을 살아갔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한 번씩 인생이 힘들고 지칠 때는 다른 무언가로 나를 위로하고 잊어버렸다. 

답답함을 무시한 채 꾸역꾸역 살아냈다. 

시끌벅적한 술자리도, 남자와의 만남도, 친구와의 긴 통화도, 세례를 받고 나간 미사시간도 

나의 답답함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인생이 바닥이라고 느낀 어느 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작은 일기장 하나를 샀다.

일기장은 그동안 속으로 삭여왔던 울분으로 가득해졌다. 쓰고 나면 잠시라도 비워진 기분으로 지낼 수 있으니 자꾸 써본다. 수시로 널뛰는 감정에 내가 사이코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래도 써본다.



'이유를 알아야겠어......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이유를 좀 알아야겠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이야기 나눌 때면 따뜻하게 안아준다. 지금의 나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글을 쓰는 순간은 온전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다. 

글을 쓰며 마흔이 된 지금 더 이상 어른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내 진심을 알아달라는 호소도 하지 않겠다. 

그저, 가슴속에 들어찬 감정을 배출해 내며 가벼워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으로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살 수 있다. 글쓰기로 용기를 얻고, 미움보다 연민을 느끼며 살아간다. 꼬여있던 마음을 풀어내고, 나 자신을 돌보게 된다. 


는 삶을 선택한 나는 살아있고, 스스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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