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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춘 Sep 08. 2024

[에세이 추천] 차녀 힙합

잘 터는 작가 이진송의 본격 차녀 반항 플로우

읽으면서 참 공감을 많이 했는데 일단 나는 장남이다. 내 아래로 두 살 차이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이진송 작가는 책에서 차녀 즉 ‘중간에 낀 자식’로서의 차별을 알리고 서러움을 위로하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되는 장남, 장녀의 묘사에서 특히 많은 공감을 했다.


그랬다. 내가 먼저 해보고 좋은 것만 동생이 했다. 그래서 나는 아람단을 했고 동생은 못했다. 옷은 거의 내가 새 옷을 샀고 동생은 내 옷을 물려 입었다. 치킨을 시키면 닭다리는 나 하나 아빠 하나였다. 책에서 둘째들은 돌사진이 없다고 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일단 내 사진은 확실히 있다) 기억이 안 난다. 동생이 한복 입고 찍은 사진 본 거 같은데 그게 돌 사진인지 백일 사진인지 모르겠다. 그건 뭐 당시 집안 사정에 따라 다를 거니까 넘어가고. 어쨌든 우리 집에도 당연히(?) 장남 우선주의 사상이 있었다. 장남이 잘 돼야 집안이 바로 선다는 이야기를 부모님뿐만 아니라 친척들에게도 많이 들었다(엄마가 장녀라 외가 쪽 사촌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동생이 까불면 엄마는 ‘어디 형아한테 그러냐’고 다그쳤고 나에게는 ‘동생이 말을 안 들으면 한 대 쥐 팼부라’라고 주문했다. 아빠와 함께 가내 기득권 세력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게 살면서 조금 단점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타인과의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원하는 식으로 하기를 바란다. ’지 꼴리는 대로 하려고 한다‘는 비난을 몇 번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닌 게, 하고 싶으면 하는 데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해버린다. 연애시절 말싸움을 하다가 여자친구가 삐져서 휙 돌아서 가버리면 절대 잡지 않았다. 나도 돌아서 가버렸다. 왜 본인을 잡지 않냐며 물으면 내 말 듣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 붙잡아서 뭐 하냐며 아주 당연한 표정으로 여자친구를 쳐다봤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0분씩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30분을 쉬고 돌아와서 너희들도 20분씩 더 쉬어 그럼 되잖아 했다가 집단적 원성을 들은 적도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렇게 하자면 순순히 그렇게 해주는 사람들 위주로 만난다. 자연스레 만나는 사람이 적고 인맥이 좁다. 자기 객관화를 부려보면 나는 심리적인 공감은 조금 하는데 행동으로 하는 배려는 잘 못하는 것 같다. 인정한다.


반면에 동생은 사람들에게 인기도 많고 친구도 나보다 훨씬 많은데 책에서 말하는 ’차녀성‘이 그에게도 있는 것 같다. 기념일을 잘 챙기고 선물이나 용돈을 잘 푼다. 나와 동생을 동시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생은 살갑고 나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어쩔 수 없다. 존재 자체로 이미 다 하고 있는 장남인 내가 굳이 구성원들에게 살갑게 굴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집에서 연습이 안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밖에 나가서도 뻣뻣하다.


이진송 작가는 다양한 차녀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데 그중에 성인이 되어서 돈가스 한 덩어리를 오롯이 내가 다 차지하고 먹을 때 울컥했다는(집에서는 바삭하게 잘 익은 중앙 부분은 장남 몫, 끝에 질긴 부분은 차녀 몫이었다고 한다) 대목을 읽다가 그러고 보니 동생을 만나면 얘가 항상 치킨을 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고등학생 때 치킨이 한두 조각이 남으면 엄마는 항상 내 밥그릇 위에 그걸 올렸다. ’형아가 더 먹어야지‘ 이러면서. 내가 나이가 더 많고 몸집이 커서 그렇다고(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장남 메리트였다면, 이 녀석 이제는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먹고 싶어서 가족끼리 만나면 항상 ‘치킨 한 마리 해야지’ 하면서 넉넉하게 두 마리씩 시키고 그랬던 건 아닌가 싶었다. 아주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지만 무슨, 그냥 치킨을 좋아하는 거지 하며 쿨하게 넘겼다(장남답다).


이 책은 위로 오빠가 있거나 언니가 있는 차녀들이 박수를 치며 ‘맞아 맞아 내 얘기야’ 하는 책이지만 장남이나 장녀들이 읽어도 ‘오호 그럴 수 있겠는데’ 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힙합‘은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마음에 맺힌 한을 다다다 시원하게 할 말 다 하는 그런 장르다. 그런데 사실 ‘차녀 힙합’은 완전히 시원하게 후려갈기지는 못한다. 왜냐면 그 대상이 언니고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대상을 셔터 뻐꺼를 날릴 순 없다. 미국 힙합 쟁이들도 그렇게는 안 하잖아. ‘그래 그들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짜증이 많이 났다‘식으로 전개되니 수위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다. 중간중간 깨알 같은 라임이 등장하는데 그중에 특히 마음에 들어 페이지를 접어 둔 문장이 있다.


’내가 숨만 쉬어도 오빠 기죽인다고 난리, 그런데 왜 나에게 요구해 자식의 도리‘


캬, 뿌잉뿌잉뿌잉.


이진송 작가의 ‘차녀 힙합’을 읽고 이분 참 재밌는 사람이네 싶어서 ’아니 근데 그게 맞아‘라는 책도 구매를 했다. 아 이것도 참 만만치 않게 터는 내용이라 신나게 읽고 있다(차녀 힙합이 12세 관람가라면 이 책은 16세 정도 될 것 같다) 조만간 리뷰하겠다.


에이요, 아윌비백!


저의 리뷰가 마음에 들었다면 따뜻한 후원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특히 이진송 작가님, 출판사 문학동네 관계자 여러분, 마지막으로 김소영 대표님은 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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