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쓰레기를 위탁받아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과 섞여서 살고 있다 보니까 다른 사람의 감정이 내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자기 기분 나쁘다고 나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전달하는 식이다. 됐어 신경 끄자 싶어도 그게 잘 안된다. 머릿속으로 자꾸 되새김하게 되고 내 기분에도 화가 생기고 짜증이 올라온다. 그리고 내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시작으로 똑같이 하나씩 전달한다.
그 쓰레기 어찌하면 좋을까. 내 안에 쓰레기 분쇄 장치가 있어서 ‘아넵 제가 처리해 드립죠’ 하면서 기분 좋게 받아서 갈아버릴 수 있다면 그만인데 그런 게 안된다. 쓰레기는 나도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모진 말을 한다.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동료였기에 적잖게 당황을 했다. 나도 같이 퍼부었어야 했는데 어? 뭐지 뭐지 하다가 덜렁 끝나버렸다. 이 쓰레기는 저한테 주실 게 아닙니다. 이 진상 고객님아 했어야 하는데 못하고 어느 순간 보니 내 손에 쓰레기봉투가 들려져 있는 셈이다. 같이 싸우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더 나아가 그런 상황을 만든 내가 원망스럽다. 이런 일련의 생각을 내 머릿속에서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소모적이고 낭비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내 손에는 쓰레기가 있다. 처리를 해야 된다. 혹여 본의 아니게 선량한 주변인에게 나도 모르게 쓰레기를 던져버릴까 살짝 불안하다.
감정의 쓰레기는 화학 처리가 된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 분해가 잘 되는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땅에 묻어두면 없어지긴 하는데 냄새가 올라오지 않게 잘 밀봉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묻느냐가 관건인데 흙의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또 감정이다. 감정으로 감정을 덮는다. 이감제감. 감정을 써서 감정을 물리친다. 얼른 다른 감정을 가져오는 게 관건이다. 그렇게 덮어두고 시간이 지나면 깔끔하게 없어진다.
자연분해되거나 타인이 다시 수거해 가는 경우도 있다. 모진 말을 했던 친구가 사과를 한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최근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랬다는 얘기를 들으니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나도 같이 싸우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식으로 맡겨둔 쓰레기를 다시 가져가려는데 이미 내 마음엔 없다. ‘됐어 그럴 수도 있지 밥이나 사라‘ 하며 쿨해질 수 있다.
내가 가진 어떤 감정을 써서 덮느냐. 그 일을 생각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집중해서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운동을 해도 좋고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한다거나 내 감정을 글로 써본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털어놓는다거나 직장인들은 주로 술을 마시며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는 방법을 많이 쓰기도 하고. 뭐 그런 것들.
반려동물을 키우진 않지만 같은 맥락에서 보면 그런 식으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새로운 감정을 생성시키는 일 말이다. ‘단지야 일로와. 언니가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단다. 그러니까 내가 빵! 하면 으악하고 뒤로 자빠져야 해 알았지 자 한다. 빵! 다시 빵빵!‘ 이런 거 하면서 쓰레기가 분해된 시간을 버는 거다.
가급적 쓰레기를 받아오지 않는 게 가장 좋은데 직장 생활을 하거나 부득이 원치 않는 감정을 받아버렸으면 얼른 노력을 기울여서 내 마음이 다치지 않게 조치를 해야 한다. 고무장갑 끼고 쓰레기를 들고 적당한 땅을 물색한 뒤 잘 파서 흙으로 덮어 발로 땅땅하고 밟아서 묻어야 한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나 반려동물이나 적당한 취미가 없을 시에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하는 수밖에 없는데 어떤 주제의 생각을 잡고 골똘히 생각하는 식으로 덮는 방법이 있다. 절대로 쓰레기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잠식당해서 마음을 다치니까 다른 생각을 끌고 와서 계속 생각하는 식으로 조절해야 한다.
괴롭히는 건 안된다. 단지 이노무쉐끼 하면서 강아지를 괴롭히거나 많이 먹고 취하는 걸로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엄마나 배우자에게 감정을 쏟아내며 다치게 하는 행동처럼 쓰레기를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면 더 썩은 상태로 나에게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가장 주의해야 한다. 자기 방어 기제도 습관인지라 해보고 그게 되면 자꾸 똑같은 걸 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나쁜 쪽으로 발달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콕 집어서 추천을 하나 하자면 좋아하는 작가를 하나 발견해서 그가 쓴 글을 읽는 것이다. 영상이나 음악과 달리 글은 생각과 상상을 동반한다. 감정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 필요한데 책을 자주 읽고 적극적으로 찾는 과정 중에 우연히 만날 수 있다. 인연과 같은 원리다. 어쨌든 국민 한 사람당 한 명씩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