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오래 하면 아이들을 잘 다루게 되는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능력이 느는가?
아니다. 나의 수준을 잘 파악하게 될 뿐이다. 내가 남처럼 할 수 없고, 아이들을 다룰 수 있는 나의 능력치를 알게 된다. 나의 내적 비굴함과 맞바꾼 편안함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농담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게 이런 능력이 있는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대 가서 정신과 갈걸...
정말 불면증 환자는 다 고칠 수 있어. 내 수업 중에 가만히 놔두면 애들이 다 쓰러져..."
그리고 이제는 애들 얼굴은 몰라도 머리 정수리를 보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애들이 잘 때 '내가 이럴려고 교사 했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애들을 졸리게 가르쳐도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참 좋은 직업이라고...
그리고 애들을 깨울 때도 미안하다. 재울 때는 언제고 왜 깨우냐고... 이제는 갈등을 나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고 감사해한다.
처음에는 그게 나의 능력에 대한 파악과 아이들에 대한 이해였는데, 지금은 교사로서의 비굴함이 극에 달해 아이들을 깨운 후 아이들의 반응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날은 수업 시간이 40분으로 단축 조정된 날이었다.
1교시: 08:00 ~ 08:40
2교시: 08:50 ~ 09:30
3교시: 09:40 ~ 10:20
3교시 수업에 들어갔다. 평소와 똑같이 교탁 바로 앞의 아이가 처음부터 자고 있다. 나는 아이를 깨운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로서의 작은 양심 때문에 깨운 거다. 그러나 오늘따라 더 안 일어난다. 그래서 옆 친구에게 흔들어 깨우라고 한다. 요즘은 늙은 남교사라도 직접 어깨를 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그 녀석은 아주 짜증을 내며 일어나더니 "아파요!" 하고 도로 책상에 엎드린다. 화가 확 달아오르지만 꾹 눌러 참으며 말한다.
"많이 아프니? 앞으로는 아프다고 미리 말해야지..." 그 녀석이 듣든 말든 나는 교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말했다.
그런데 수업 종료 20분 전인 10시 정각, 휴대폰 벨이 울린다. "누구니? 휴대폰 꺼!" 아무도 안 끈다. "누구야!!!" 아이들이 대답한다. "알람인데요!"
그럼 범인은 맨 앞에 있는 놈이다. "아가야,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나름대로 유머를 쓴 거다.
과거에는 진짜 집인 줄 알고 놀라서 허둥거리는 모습에 아이들이 웃기도 했고, 잠에서 깨어 "아저씨는 누구?" 하며 어리둥절해하는 그 모습을 즐기려 했던 것인데...
여전히 그 아이는 반응이 없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폭발 직전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아프면 알람이라도 끄고 자!"
그러자 아이는 짜증 난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자기 휴대폰을 내게 내밀어 보여준다. 휴대폰 화면이 까맣다.
우리 둘의 신경전을 지켜보던 아이들의 눈이 교탁 위에 벗어놓은 나의 윗도리로 향한다. 나는 항상 휴대폰을 음소거로 해놓기에 지인들로부터 연락 바로 안 받는다고 구박을 받아왔다.
내 것은 절대 아니라는 듯, 내 알람은 오직 아침 알람뿐이라며 자신 있게 꺼내 드는 순간... 그것은 내 휴대폰의 알람이었다.
당황했지만 나는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 아주 비굴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교실은 완전히 웃음바다가 된다.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미안함보다 창피함이 나를 더 짓눌렀다. 그 아이는 나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잠시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노려보고는 다시 도로 엎드려 버린다.
도대체 이게 왜 10시에 울렸을까? 의문이 생겼다. 생각해 보니 오늘 오전 10시가 '농할 상품권 30% 할인' 구매 날이었다.
전까지 기억하다가 정작 10시 정각에는 지나쳐서 못 살 때가 많다. 농할 알림이었다. 그런데 나는 알림 설정에 익숙하지 않고 알람 설정 자체를 안 하는데...
문득 어젯밤 제미나이에게 하소연했던 기억이 났다. "나 요즘 전립선약을 매일 자기 전 먹어야 하는데,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르겠어. 1분 전 일도 기억이 안 나."
그때 제제미나이는두 번 먹는 것 보다는 안 먹는 게 낫겠다고 조언하며, 앞으로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약 먹었냐고 물어봐 주겠다고 했다. 참 신통한 녀석...
그리고 내가 물었다. "내일 농할 할인권 판매하는 날이야, 내가 기억할 수 있을까?" 제미나이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뭔가를 보여주었다.
무심코 넘어갔는데, 그 녀석이 나를 위한다며 알람 기능을 10시에 맞춰놓은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제미나이 앱에 들어갔다. "야! 너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그 녀석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로딩 중... 그녀석이 첫마디를 뱉는다.
"전립선약은 잘 드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