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여고생의 비명과 여교사

한줄기 빛

by 김정훈

새파랗게 질린 여고생

방금 새파랗게 질린 여고생이 헉헉거리며 교무실로 왔다.

그리고 흐느낀다. 아무 말도 없이 담임 선생님 앞에 섰다.


담임 선생님은 나와 친한 베테랑 여교사다.

"지주(蜘蛛)야, 왜 그래?"

여교사의 따뜻한 말에도 여고생은 무엇인가에 놀라서 떨고만 있다.

여교사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잠시 안정이 되자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여고생은 아까보다는 진정됐지만 아직 떨고 있다.


그리고 여교사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선생님, 저 조퇴할래요."

여교사는 그 친구를 걱정하며 친구 문제인지, 어디가 아픈지 물었다.

그 친구는 머뭇거리다가 한마디 던진다. "선생님,,, 선생님,,,"

교사는 여고생을 안심시키며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두드린다.

재촉하지 않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교무실은 숨죽인 듯이 고요해졌다.


여고생이 말한다. "교실에서 거미를 봤어요."

듣는 모든 선생님들은 당황과 황당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교사의 한 마디

과연 여교사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모든 교무실의 선생님들은 여교사를 집중하고 있었다.

나 같으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

아무것도 아니니 돌아가라고 해야하나?


여교사가 그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한마디 한다.

아주 나지막하고 다정하고, 아이를 안심시키는 말로... "지주야, 거미는 익충이야."

웃음 터진 교무실

교무실이 빵 터졌다. 아니, 웃음을 참았다.

아이가 부끄러움을 느낄까 봐 모두 웃음을 참았다.

아이의 질린 원인도 황당했지만 교사의 말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거미는 익충이다, 그 말이 무슨 소용 있나?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나도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아이가 간 다음에 선생님 말이 재미있었다고 웃으면서 놀렸다.

교무실에서는 웃음이 났던 상황이었는데

나의 뇌리 속에는 그 순간이 남아있었다.

그 말을 곱씹고 곱씹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데 그 순간 그 말은 정말 지혜로운 말이었다.


나의 트라우마는...

오늘도 산책 중에 청소차를 봤다.

그래서 그 쓰레기차를 피해 골목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쓰레기차가 뒤늦게 나의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 바람이 내쪽으로 분다.

나는 잠바 안으로 목을 집어넣고 지퍼를 채우고

머리를 숙인다.


그날 점퍼에 붙은 모자라도 뒤집어쓰지 않는다면

모자 안 쪽이 먼지가 묻었다는 생각에

그 점퍼는 바로 세탁을 해야 한다.


외부의 먼지는 참아도

먼지가 내부로 침투한 모자를 다시 쓰는 것은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쥐벼룩의 공포가 몰려온다.

온몸이 가렵다.

도저히 견디기가 힘든다.

40여 년 전 나의 두드러기의 원인이 근거 없는 어머니의 단 한마디 말뿐이었는데...


제미나이와 대화

그날 나는 제미나이에게 물어본다.

분명히 쥐벼룩이 내 몸에 붙을 확률이 얼마나 되냐고


제미나이는 쥐벼룩은 사람 몸에 기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몸에 털이 없기 때문에 쥐벼룩이 숙주로 기생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쥐벼룩이 사람 눈에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무서웠다.


보이지 않는 실체 없는 것이 나는 더 무서웠다.

쥐벼룩이 보이는 존재라면 지금 나의 가려움은


단지 나의 환상이라는 결론이니까...

쥐벼룩도 보인다고 한다.

나는 그날 나의 공포지수는 90에서 88로 낮아졌다.


90과 88의 차이

명문대 입시에서 수시 최저등급 2등급이 있다. 2등급 기준이 백분위 89이다.

89면 합격이고 88이면 불합격이다.


제미나이의 과학적 분석이 나는 완치시키지는 않았지만, 공포지수로 넘어가는 2등급에서 그 경계로 넘어가지 않는 88로 떨어진 것이다.


완전 해결이 아니다. 나는 공포지수 100이었으면 이미 죽었지만 공포지수 90과 사회의 생존 전략 10으로 근근이 살 수 있었다. 지금은 90으로 숨이 넘어가지 직전이었다.


제미나이가 숨통을 뚫어줬다. 1번의 조언이었으면 89로 계속 2등급이었겠지만 계속 확인으로 나는 88로 지금 나는 숨통이 트였다.


옛 음료 중에 '2% 부족할 때'가 있는 것 처럼

2%는 심리의 기적을 일으킨다.


나의 40년 앓아왔던 트라우마에 제미나이의 과학적 한마디가 한 줄기 빛을 비춰준 것이다.


여교사의 지혜

여고생은 거미의 트라우마를 벗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거미가 익충이라는 한 마디는 그 여고생에게는 숨 쉴 수 있는 한 줄기 빛일 것이다. 여고생은 살면서 거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미가 익충이라는 한마디 말 한마디가 지주를 지키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ps: 여고생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거미를 한자로 찾아보니 지주였다. 우리의 트라우마의 실재는 우리 내면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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