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그루 Jan 28. 2024

달갑지 않은 운동회

문방구집 딸 시점


  엄마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아빠를 보내고 이제는 혼자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했기에 두 딸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문구사를 열었다.     

  나와 동생 이름의 앞 글자를 딴 '영상문구사'

  일층은 문구사, 이층은 살림집이었기 때문에 다른 가게보다 더 일찍 문을 열었고, 가장 늦게 문을 닫았다. 늦은 밤에 편지봉투 한 장이 필요하다고 일층의 초인종이 누르는 손님이 있으면 엄마는 셔터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등교시간에 준비물을 사러 밀려드는 어린 손님들 중에 돈을 미처 준비하진 못한 아이가 있어도 엄마는 일단 준비물을 챙겨 보냈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면서 영상문구사는 엄마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지금이야 학교에서 준비물을 다 마련해 주지만, 그때는 도화지 한 장까지도 다 학생 개인이 준비해야 했었다. 새 학기가 되면 전과나 문제집을 사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통 크게 연필 한 다스 씩 서비스로 주었다. 어쩌다 꼬마 도둑이 잡히는 날엔 엄마는 호되게 야단을 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약속을 받아낸 후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물려 집으로 보냈다.

  “영상 아줌마한테 혼나고 저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도둑질 안 했어요.”

  1졸업생이었던 재희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엄마를 찾아와 감사했다고 인사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운동회가 달갑지 않았다.

  지금은 소규모로 운동회가 진행되지만 그때 가을운동회는 학교의 큰 행사여서 한 달 정도는학생들이 운동장 모여 행사 연습을 했다. 운동회 준비물이 정해지면 사장님들은 도매상에 가서 콩주머니, 부채, 족두리, 청사초롱 등을 떼어왔다. 엄마와 거래하던 도매상은 일찍 가야 더 많은 물건을 배정해 주었기에 그때마다 가게를 봐야 하는 나는 입이 나왔다.

  일단 중학생 사춘기 소녀 눈에 아이들이 예뻐 보일 리 없다.

  지우개만 만지작 거리다가 가는 아이,

  살 것도 아니면서 조잘조잘 질문만 많은 아이,

  아줌마는 어디 갔냐며 찾는 아이.

  그리고...

  솔직히 말하, 그 좋은 계절에 다크서클이 짙은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 편치 않았다.

  부피가 큰 보따리를 이고 지고 오는 엄마의 모습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짠하기 그지없다.

  끼니도 거르고, 화장실조차 편하게 가지 못했던  엄마의 희생과 아이들의 묻은 돈으로 나는 컸다.

  물론 가난했거나,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운동회의 추억은 엄마의 피곤함으로만 기억된다.


  기억을 끄집어내어 다시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글을 쓰면서 순간순간 울컥하기도 하고, 포장된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남겨두고 싶다.

          

#문구사집딸 #운동회 #엄마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뜨개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