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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시언니 Dec 12. 2019

모든 창문의 불이 켜지길, 그 빛이 서로를 지켜주길

네 잘못 아니야. 그 누구도 너를 만질 자격은 없어(3)


<10개월 >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횟수가 줄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점점 혼자 거리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몸이 얼어붙어 한 걸음도 뗄 수 없을 것 같은 때도 있었지만 아주 가끔이었다. 아직 밤길을 긴장감 없이 걷기는 어려웠지만 곧 그 긴장에도 익숙해졌다. 그래도 너무 힘들 때면 의지하는 사람들과 통화를 하며 걸었다.



그때쯤.... 사건 장소를 다시 찾았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으로는 공원, 한쪽으로는 건물이 있는 그 자리.

나는 거기에 놓인 불 꺼진 건물들이 사무실로 빽빽이 들어 차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주저앉았던 나지막한 계단이 사무실로 올라가는 입구일 거라 생각했다.

내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던 그때, 단 한 개의 창문도 열리지 않았던 건

그 창문 뒤에 사람이 없기 때문 일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찾은 그곳에서 나는 진실을 마주했다.

그 건물들은 사무실이 아니라 가정집이 빽빽이 들어찬 빌라였고

열리지 않은 창문 뒤에는 사람이 있었다.

다시 삐죽삐죽 머리가 섰다.










<에필로그>



내가 이 일을 겪은 건 9년 전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여 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 보고자 한다.

모두 잠든 고요한 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부스스 일어나 불을 켜지 않고 슬그머니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봤다.

앞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남자는 어딘가를 향해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이 난무했다.


그때였다.

어떤 아저씨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조용히 좀 해달라”라고 그를 향해 점잖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의 분노는 아저씨에게로 방향을 바꿨다. 더 무자비한 욕설과 고성이었다. 아저씨는 집이 노출되어 충분히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남자는 분에 못 이겨 아저씨에게 당장 내려오라고 했고, 아저씨는 알겠다고 기다리라며 말을 멈추고 창을 닫았다. 그때를 틈타 남자는 자동차 트렁크를 열었다. 그 안에서 야구 방망이 같은 것을 꺼내 들고 아파트 문 앞으로 왔다.


그때, 창문 곳곳의 불이 켜졌다.

소리 없이 지켜보던 많은 주민들이 남자를 향해 조용히 하라고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으니 그 방망이 휘두를 생각 따위는 하지도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경찰도 도착했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다음날 아침, 집 앞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이 어둑할 때도 위험하다기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창문의 불이 켜지길 기도한다. 그중에는 나와 당신의 불빛도 있기를. 그 빛이 서로를 지켜주기를.



‘물론 세상은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돌봐야 한다. (연애의 기억, 줄리언 번스)’












글/그림 : 두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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