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전 금요일

by 별똥꽃

멀리 사는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남편 출장 오는 길에 아이들과 같이 오고 있단다

네 시 치과 예약을 당길 수 있나 알아보았다

예약이 너무 많아 안된단다

후배는 시간이 없어 일만 보고 그냥 가야 할 것 같단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며 선물카드를 보냈다


치과에 가는 길에 일단 쓰레기를 먼저 버리기로 했다

쓰레기장에 경비 아저씨가 보인다

분리수거를 마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누군가 음식물 통 위에 놓고 간 까만 봉지가 보인다

경비 아저씨께 알리고 봉투를 열어 통에 담는 순간

수 십 마리의 구더기 새끼들이 봉투 안에서 바글거린다


삼십 분을 걸어서 치과에 도착하니

온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른다

치과에서 먼저 구강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보며 치과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치위생사가 클리닝을 해주었다

다음 검진과 클리닝은 당겨서 6개월 후로 잡았다


치과를 나온 후 딸과 자주 가는 서점에 혼자 들렀다

먼저 생각해 두었던 책들을 검색해 보았다

책 위치 프린트 아웃을 가지고 책들을 찾아냈다

다른 층에 있는 일본어 문법책도 한 권 샀다

휴가는 끝나가는데 책을 세 권이나 산 것이다

책방을 나와 택시를 탔다


집에 오니 강아지가 나를 격하게 반긴다

나는 그 녀석의 반가움이 참 부담스럽다

딸에게 편의점에 같이 가자고 했다

어쩐 일로 흔쾌히 간단다

아파트 입구 맞은편 정자에 노인 네 분이 계셨다

35도가 넘는 땡볕 더위에 밖에 계시니 걱정이 된다


제일 먼저 맥주 두 병을 샀다

아이가 사탕 두 개를 고르는 동안

물 여섯 개와 군 계란 여섯 개를 카운터에 놓았다

아이가 집에 군계란이 있다며 의아해한다

아이에게 우리가 먹을 게 아니라고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노인 분들께 물과 군계란을 드렸다


먹다 남은 점심과 오징어채를 안주 삼아

맥주 한 병을 마셨다

딸이 마주 앉아 사탕을 먹는다

남은 맥주야 오늘 밤 마시면 되지만

책 세 권은 언제 다 읽는 담

딸아, 너는 이담에 엄마처럼 살지 마라!


오늘 밤은 어쩐 일로 윗집에서 조용하다

하지만 폭풍의 전야처럼 두렵다

내일은 광복절에 말복인 토요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소음에서 해방될 날이 올까?

맥주를 다 마시면 내일 종일토록 깨지 않고 잘까?

이 더운 날 어디로 피신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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