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내용과는 (거의) 무관합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KBS에서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고 왔다. 한 달 정도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공부하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바쁘게 하다 보니 고작 이 주의 시간을 남겨두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마저도 주말 이틀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 내기가 힘들어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날은 열흘 남짓 뿐이었으니, 결국 이번에도 벼락치기식으로 공부한 셈이다. 이맘때쯤 따는 대부분의 자격증이 그렇겠지만 이것 역시도 이력서에 써넣기 위한 용도이기는 했는데, 성적이 안 좋으면 안 써넣으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이라 큰 부담이 없었다.
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익숙지 않은 수많은 표현을 보면서도 오히려 즐거웠다. 내가 모르던 표현들, 혹은 잘못 알고 있던 표현들을 발견할 때마다 아주 작은 자갈을 내 공간 어딘가에 조금씩 쌓아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헷갈렸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따로 정리해두겠다고 마음먹은 지 몇 달이 지났는데, 그걸 이제야 (다른 방식으로) 공부한 것이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조금 더 일찍 공부해두었으면 좋았을걸. 그리고 연이어 생각한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러니까, 이만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안 했던 거겠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학원을 다니고 보충 수업을 들어봐도 S+V+O+O.C가 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을 뿐더러 과거분사나 현재 어쩌고 같은 표현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수능을 겨우 네다섯 달쯤 앞둔 어느날 문득, 이제는 정말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EBS에서 나온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문제집을 붙잡고 하나도 읽히지 않는 그 문제들을 초를 재가며 풀었다. 오십 문제 중 열 몇 문제, 심하면 스물 몇 문제까지도 틀렸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달랐다. 많이 틀려봐야 네다섯 문제였다. 모의고사와 수능에서는 아쉽게도 1, 2점 차이로 1등급은 받지 못했지만 2등급은 가뿐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때의 노력 덕분에 나는 지금도 영어 실력이 바닥을 기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게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도 영어 실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중위권, 혹은 중상위권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한 달의 벼락치기식 공부는 나에게 엄청난 힘을 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생활에 기반이 될 영어 실력으로써의 힘뿐 아니라, 무엇이든 내가 필요성을 느끼고 돌입하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써의 힘까지도.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내 생각보다 운동을 좋아한다. 그리고, 운동을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공부를 좋아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공부하고 있을 때 내가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감각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어떤 지식을 얻게 되는 것과 그 지식을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과정 모두가 좋다. 이건 아마 내가 지금 스스로 하는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누가 짜준 생활계획표대로 움직이거나 커리큘럼대로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그 중에서도 하고 싶은 것을 골라서 할 뿐이다. 물론 가끔 하고 싶지 않은 공부가 섞여 있을 때도 있다. (이를테면 컴퓨터활용능력 실기 시험이 그렇다. 필기를 1급으로 따놓은 김에 실기도 1급으로 따고 싶은데 관심도 재능도 영 없는 분야라 생각만으로도 하기 싫어 죽겠다.) 그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공부들은 재밌다.
요즘 거의 매일 밤 엄마와 한 시간 반씩 산책을 한다. 어제는 엄마가 나에게 달에서 직선으로 얼만큼 떨어진 곳에 있는, 아주 빛나는 별이 금성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별이 가지는 문학적 은유나 순수성에 대해서라면 모를까 행성이나 우주 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어제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자꾸 별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다. 오늘 산책을 나가서 두 번째로 찾은 것이 달 옆의 금성일 정도였다. (첫 번째로 찾은 것은 부쩍 자주 보이는 동네 고양이들이다.) 그래서 오늘은 자기 전에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려고 한다. 몇 달 전만 해도 잠이 안 올 때 잠들기 위해 켜놓았던 바로 그 다큐멘터리 말이다.
이건 오늘 한 이야기와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오늘의 즐거운 발견이므로 쓴다. (그리고 동시에 꽤 괜찮은 의문이기도 하니까 제목으로 써먹기로 했다!)
무릉도원의 복숭아는 딱복일까 물복일까 고민하다가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아마도 천복(천도복숭아)인 것 같다. 손오공이 천도복숭아를 몰래 훔쳐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어느곳에서는 납복(납작복숭아)라고 하는 것도 같은데 어쨌거나 딱복도 물복도 아니라니 괜히 서운하다. 무릉도원의 복숭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꼭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