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케이의 근로계약서 재작성일이었다. 갑작스럽게 부서를 이동한 지 한 달 하고 이틀째 되는 날이기도 했고, 한 달 간 일한 매장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매장으로 지원 근무를 나온 두 번째 날이기도 했다.
일이 끝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택시를 잡으려는데, 택시가 줄지어 서 있던 전날과는 달리 이 날은 한 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케이는 어디선가 한 대쯤은 와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며 큰 길을 향해 걸었다. 대로변에 나서기 직전 택시 한 대가 나타났다.
XX역으로 가주세요.
올림픽대로 타면 되죠?
아, 네, 아마 그럴 걸요...? 저도 잘 몰라서.
올림픽대로를 타면 거리가 좀 더 멀어 택시비가 더 나오는 대신 다른 길로 가는 것보다 몇 분 더 빨리 도착한다는 사실을 케이는 알고 있었다. 돈이 더 나와도 설마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금액 이상일까? 만약 그렇다면 근처에서 내려야지 뭐, 어차피 아는 길일 텐데. 케이는 생각했다.
올림픽대로를 타자마자 택시기사는 시속 120km로 밟기 시작했다. 그 화끈한 속도감에 케이는 정면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아주 부드럽게 차선을 오가며 다른 차들을 제치는 너무나 잔잔한 그 태도는 프로페셔널 그 자체라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직 집까지는 몇 분을 더 가야 하는 상황인데 택시비는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케이는 초조해졌다. 회사에서 지원해준다고는 하지만 본인이 내야 하는 기본 금액도 있는 판에, 거기에 추가금액까지 지불하고 싶진 않았다. 밖을 돌아다니다 커피 한두 잔 사먹는 건 쉽지만 출근길에 커피 사 먹기는 싫은 것과 똑같은 심정. 아무튼 일하면서 내 돈 쓰기 싫은 그런 심정. 케이는 하루에 자기 돈을 만 원씩 보태 퇴근해야 하는 매니저를 떠올리며 대신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마지노선 금액에서 700원이 추가된 순간, 케이는 기사님 저 여기에서 내릴게요를 외쳤다. 아는 길이기도 했고, 내리기에 적당한 길이기도 했다. 여기서부터 집까지 걸어가면 30분이 채 안 걸릴 거였다.
기사는 원래 가려던 목적지를 말하며 거기까지 안 가고요? 라고 되물었고 케이는 순간적으로 네 누가 여기까지 데리러 나온다고 해서요, 라고 답하려던 걸 참고 네 여기서 내릴게요, 라고 말하며 영수증을 받아챙겨 내렸다. 아무튼 그래서, 거기서부터 마냥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배가 너무도 고팠던 것이다. 그래서 품에 안고 있던 햄버거 포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던 매니저의 애인이 잠깐 들러 일하는 인원수만큼 사다 준 노브랜드 햄버거를. 케이는 생각했다. 맛있다고. 햄버거는.
그러니까 케이는 코로나 확산을 이유로 일종의 구조조정을 당하느라 원치도 않던 부서로 배정이 돼 오후 다섯 시에 출근해 아홉 시간 동안 팔자에도 없던 업무를 하다가 퇴근 택시비 몇 백원 더 내는 게 아까워 중간에 내려 연봉은 똑같은 새 근로계약서와, 에어팟과, 카드와 기타 등등이 들어있는 노브랜드 햄버거 봉지를 손으로 잘 틀어쥐고 사람이라곤 차에 타고 있는 사람밖에 없는 그 넓은 거리를 새벽 두 시 반에 홀로 걸으며 햄버거를 우걱우걱 처먹고 있던 것이다. 그럼 아니 시발 이게 뭔가 싶어 눈물이 나야 하는데 그냥 존나 웃긴 것이었다. 근데 더 웃긴 게 뭐냐 하면 집에 와서 이만오천구백원짜리 찜닭을 시킨 것이다.
케이는 생각했다.
맛있다고. 찜닭도.
2020년 9월 18일의 임시저장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