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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프 Dec 21. 2022

임시의 삶


2020년 10월 27일 화요일 오전 7시 22분



임시의 삶. 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가도 내 집도 아닌 곳. 본사도 내 일할 곳도 아닌 곳.

잠만 잘 곳. 잠깐 일할 곳. 잠깐 가지고 있을 (살찐)몸.


그러니 집안을 꾸미는 일에도, 아니 기본만 챙기는 것에도 시큰둥하고,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그럼에도 일은 열심히 하지만), 그러니 지금의 내 몸에 맞춰 새로 스타일링하고 옷을 살 생각은 안 하고......


장은진 소설 <외진 곳>에 대한 이지훈의 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아닌 것을 발견하기>에서는 유동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동성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데, 이 평을 읽고는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의 혹은 타의로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녀야 하는 사람들, 유동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만큼 임시적인 비-장소도 많아진다.'


내가 머무는 공간에 부끄러움을 느끼니(실제로 공간적인 여력도 안 되니) 친구들을 부르지도 않고, 내가 일하는 직무에 부끄러움을 느끼니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도 않고, 내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니 예쁜 옷을 사지도 않고......


부끄러움과 "내가 아닌" 것의 결합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되고 싶은 내가 아닌" 것.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나인데.


어려운 일이긴 하다. 2년 살고 나갈 집에 맞춰 인테리어를 꾸미고, 언제 빠질지 모르는 살을 두고 옷을 사고. 하지만 이 순간도 모두 나다. 내가 아니라고 믿는 나도 모두 나다. '오제는 이러한 공간을 일컬어 비-장소(non-place)라고 명명한 바 있다.' 나는 나의 이러한 공간을 일컬어 이렇게 말하겠다. 비-장소(be-장소). "되고 싶어하는", "되고 싶은" 장소. 아직 되지 못한 장소를 향해 마음이 떠 있는 be-장소라고.


(중략)


좀 더 커다란 집으로 이사를 가고, 본사 XXX팀으로 돌아가고, 살을 빼서 날씬해지면 더 이상 나의 삶이 임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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