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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Feb 27. 2023

충동적인 아이, 감정적인 엄마

- 잔인한 엄마 / 나쁜 엄마

오늘은 아이 드잡이를 했다.


내가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참지 못하고 아악, 비명을 지르며 책을 내던졌다. 역시나 아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이유는 여느 때와 비슷한 것이었다. 밥을 잘 먹지 않는다든가, 이것 저것 메뉴를 바꿔가며 ‘지금 당장’ 갖다주기를 요구한다든가, 몇 번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해 다짐을 받고 약속을 했음에도 지키지 않는 모습들.

생각해 보면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늘상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유독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돌이켜 보면, 그건 아마도 조금씩 나의 능력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내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듯하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만 해도 내가 나서면 해결되는 일들이 많았다. 내가 엄마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정보를 주고 받으면 우리 아이는 자연스럽게 그 엄마들의 아이와 어울릴 기회가 생겼고,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단체로 놀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아이의 ‘성향’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더 이상 엄마들의 관계가 아닌, 아이들의 관계가 중심이 되면서 나의 노력도 한계를 드러냈다.


굳이 엄마들과 가까워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자 하면(그럴 수 있는 성격이면) 그런 아이는 친구들이 생겼고, 그 엄마도 놀이터 무리가 생겼다. 그럼 그 무리를 중심으로 수영이나 농구 같은 운동 클래스가 형성되고, 수업을 듣는 반도 만들어졌다. 그래서 딱히 학원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새로운 학원에 들어가는 팀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대형학원을 다니는 엄마들끼리 네트워크도 생겼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놀이터에서 놀지 않는다. 아니, 성향이 맞는 아이가 없어서 놀지 못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 역시 그런 엄마들과의 무리는 형성하지 못한다. 누군가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팀을 만든다 해도, 우리에겐 그런 제안이 들어오지 않는다. 개인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어서 학원에 연락해 봤지만  ‘팀을 꾸려 와야 한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일단 대기를 걸어놓긴 했으나, 우리 아이는 아마도 언제 들어갈지 알 수 없는, 기약없는 대기자가 될 것이다.


이제 아이가 막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것이니, 그동안 내가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려고 노력했던 관계는 길어야 2년이었던 셈이다.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결국 아이들도, 엄마들도 서서히 멀어지기 마련이었다.

어차피 독자노선을 타게 될 것이었는데  너무 긴 시간 동안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있다가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스스로 그들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중인지, 아니면 저절로 멀어지고 있는 중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터져 버린 것이었다. 아이는 그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말에 전혀 동요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 들고, 여전히 음식을 잘 먹지 않고, 간단한 숙제조차도 내가 턱 받치고 보고 있지 않으면 금방 딴 길로 새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이 아이를 잘 끌고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나. 우리가 제대로 된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일었다. 소리를 지르고 눈을 부라리면서 드잡이를 하던 내가 결국에는 지쳐 떨어져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이는 불안해 했다.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는데도 내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하여 내가 좋아하던 레고 토끼 모형을 들고 와 웃으며 내 앞에서 까딱까딱 귀를 움직이는 시늉을 하며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이는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거잖아요.”라고 하면서 계속 내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다 느끼고, 아이가 어떤 마음일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웃어주질 못했다. 너무 잔인한 엄마다.


급기야 아이는 “이제 이해가 돼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나 정말 너무 잘못한 것 같아요, 죄송해요.”라고 울면서 말을 했는데 나는 순순히 잘못했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이 더 아파서 아무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정말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다기보다는 상대방과의 불편한 관계가 싫어서, 결국은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자책하는 것만 같아서. 그것이 아이가 알고 있는 유일한 해결방법인 것 같아서 그 말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계속 그 말만 하는 아이를 보니, 마치 어릴 적 나를 보는 기분이었다.


“니 잘못 아니야. 그러니까 이해했다고 하지 마.”


참다 못해 한 마디를 하자, 아이는 참았던 눈물을 다시 터뜨렸다. 내내 입을 다물었던 내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다가, 내가 입을 열자 그제야 안심을 했던 모양이다. 아이를 안아주고 토닥이면서 나는 더욱 실감했다. 내가 아이를 키울 깜냥이 안 된다는 것을. 이렇게 아이에게 아픈 기억 하나를 더 만들어주고 말았으니까. 죄책감 하나를 더 심어주고 말았으니까.


난 정말 나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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