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의 신(神)과 함께

3. 첫 직장

by 다니엘 김

나에게도 첫 번째 취업은 누구 못지않게 어려웠다. 제대 후 복학했던 2000년 3월부터, 취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꼬박 5년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온갖 고통을 연료 삼아 달렸고 그 마라톤의 결승선에 다다를 참이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만큼 자신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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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아시아 육상 선수권 대회 통역 자원 봉사

힘들었던 시절을 잊지 말자며 보관해 두었던 2005년 다이어리를 열어보았더니 당시 지원했던 기업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하반기 공채 모집의 시작을 알리던 9월, 두산건설과 삼성물산 2개 사에 지원했고, 10월에는 남광토건, 한화건설, 대림산업, 금호건설, GS건설, 신성건설, 동부건설, 신일 토건, 이수건설, 신동아 건설, (주)삼호, (주)한라, 롯데건설, 대우건설, 현진에버빌, 현대건설 등 16개 건설사에 지원했으며, 11월에는 삼환기업, 성지건설, 한샘, 대우엔지니어링, 명지건설, 신세계건설, 계룡건설, 임광토건 등 8개 회사에 추가 지원했다.

2005년 10월 월간 계획표 및 입사 지원 현황

대부분 기업에서 한 자리 수의 신입 사원을 모집했었는데, 서류 합격자들에 한해서 두산 건설의 경우 전공 외 한자시험, 삼성 물산의 경우, SAT 시험을 별도로 치렀다. 두산 건설 한자 시험을 치르고 나서, 자기는 한자능력 검정시험 1급을 미리 취득해서 인지 문제가 너무 쉬웠다고 떠들며 잘난 척하는 옆 응시자를 보며... 마이크 타이슨의 주먹을 빌어 그의 턱에 살포시 꽂아 주고 싶었었다. 삼성 물산 서류 전형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야 부랴부랴 시중에 나온 SAT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 풀어보았지만 예상대로 '아쉽게 이번 기회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예의 바른(?) 전형 결과 메시지를 받고 말았다. 취업 성공의 순간만을 꿈꾸며 모든 걸 참고 이겨냈는데... 서류 합격 이후 좀처럼 최종 면접까지 가지 못하고 줄이어 고배를 마셨다. 2005년 하반기 신입 공채 채용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이제 졸업까지 만 4개월도 채 남지 않아 '결국 실패인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점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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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소개서에 온 정성을 쏟고 있던 10월 셋째 주, 서류 전형, 전공 시험, 실무진 면접을 모두 치렀던 신성건설(주)에서 최종 면접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최종면접은 당시 신성건설 회장, 대표이사를 비롯 기업의 실질적 경영진 6명이 면접관으로 참석하였는데, 나는 밝고 자신 있는 태도로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으며 마지막까지 실수하지 않고 만족스럽게 면접을 마쳤다. 그리고,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던 10월 넷째 주 수요일, 신성 건설로부터 오랜 역경에 마침표를 찍는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다. 당시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타고 가던 지하철에서 내려 부둥켜안고 기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20여 년의 고통을 기쁨의 순간으로 바꾸는 데 합격 안내를 받았던 그 몇 초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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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성건설은 건설사 시공 능력 평가 38위로 국내에서는 미소지움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수도권 및 지방 대도시에서 성공적인 분양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으며, 1977년 사우디 아라비아 진출 이후 다양한 해외 공사를 진행하면서 풍부한 해외 경험을 가지고 있던 탄탄한 중견 건설사였다.



입사 날짜를 안내받고 나서 학교에 제출할 입사 확인서를 받으러 본사에 갔을 때, 관련 부서에서 우연히 대학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선배로부터 해당 채용의 경쟁률 (110:1), 국내 주택 사업에서 회사 역량진행 중인 해외 사업 및 해외 사업 미래 전략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난 뒤 진행 중이던 구직 활동을 모두 접고 신성건설에 내 영혼을 갈아 넣어 보기로 결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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