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함께 했던 지인들은 내 성공을 운운하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지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카카오톡 음성 문자를 보내 언제 집에 올 거냐고 묻는 만 다섯 살짜리 둘째 아이가 있는 갈길 구만리 아빠이자, 여전히 더 높은 곳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중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이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면서 혹시 내가 큰 실패를 하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항상 우려하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염세주의자는 절대로 아니지만 무언가 잘 되어가거나 평화로울 때 불안함이 가슴 한 곳을 차지한다.
이러한 불안장애(?)는 나의 유년시절에서 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좌측부터 사춘기에 접어든 만 10세 첫 째, 아무것도 모르는 만 5세 둘째 열두 살 뜨거운 여름 어느 날, 어른들만 미리 알고 있던 어머니와의 이별, 점점 비어 가는 쌀통을 긁어대며 끌탕하시던 할머니, 엄동서란 바닥을 드러낸 연탄, 촌지가 끊기자 노골적으로 괴롭히던 초교 시절 담임선생, 처음 만난 날 눈치도 없이 내 옷을 만지작 대며 웃던 열 살 터울 이복동생 동생, 전기/수도세 미납 고지서와 독촉장, '부모님께서 이번 육성회비 깜빡하셨나 보다.' 하시며 나를 배려해주시던 중학 시절 담임선생님, 꿰매 신었던 양말, 칠천 원짜리 보세 신발, 키가 부쩍 커서 팔목/발목 위로 한참 올라온 교복 상하의, 버스 탈 돈이 떨어져 터덜터덜 걸어 귀가했던 날들, 바쁜 척하며 자리를 피해 건너뛴 점심 식사, 하루아침에 생긴 동갑내기와 다섯 살 연하 의붓남매, 상황이 이런데 니깥게 무슨 공부냐고 다그치던 친척 어른, 방학 내 시간제 일용직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송금해 달라던 새어머니, 사회생활을 시작도 하기 전에 붙어버린 신용불량자 딱지...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5년 건설사 신입 공채로 입사할 때까지도 고통의 연속이었으니 어린 시절만 힘겨웠던 게 아니긴 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울 상황들도 일상처럼 반복되었는데, 내게 삶은 너무 감당하기 버겁고 비참했었다. 그럼에도 크게 엇나가지 않고 꿋꿋이 버텨주었으니, 그런 면에서 나는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운동선수나 가수들에게 능력이 타고났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되돌아보면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해내고자 하는 의지는 어느 정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전혀 티 내지 않는 연기력도 그에 못지않게 수준급이긴 하다.
본격적으로 이 글의 대주제인 이직(移職)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단순히 이직뿐 아니라 인생의 위기를 해쳐나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 두 가지를 미리 점찍어 두고 싶다. 그 필수적인 요소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끈기(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와 의지 (어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내적 욕구)이다.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꿋꿋이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고 성공을 쟁취할 수 있다.
열정(熱情)은 상황에 굴하지 않는다.
현실은 꿈꿔왔던 내 미래의 모습이 단지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겨우 입만 물 밖으로 내놓고 헐떡거리면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익수자... 그나마도 얼마나 버틸지 몰랐었다. 언제든 내 꿈을 포기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식어버릴 열정이라면 그걸 열렬한 애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때마다 '열정은 상황에 굴하지 않는다.'라는 인생의 신조 (motto)를 수도 없이 되뇌면서 열정이 수 그러 들지 않도록, 상황에 굴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2005년 개인수첩에 적었던 각오/다짐들지옥 같았던 상황을 청산할 방법은 오직 하나,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전공(건축공학)을 살려 튼튼한 건설사에 입사해 승승장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대 이후, 일/주/월/학기/년 단위로 계획표를 작성하여 실천해 나갔다. 두 번의 기회는 없으며 계획한 일들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실패한다는 강박관념 휩싸여 기계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나 씩 지워나간 결과, 전 학기 장학금을 받은 것은 물론, 대학 4학년 여름방학 즈음 취업을 위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조건(학점, 토익점수, 자원봉사, 건축 기사 및 건설 안전기사와 같은 관련 자격증 취득)들을 과에서 가장 먼저 갖추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만난 후배 하나는 재학 시절 나를 '무섭고, 징그러웠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때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고 말았지만 쓰디쓴 추억이 되살아나서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었다.
2005년 04월 일일계획표만약 내가, 지긋지긋한 현실과 타협하고, 적당히 포기하면서 내 의지를 꺾는 선택을 했었다면... 지금 어떤 사람으로 어디에 서 있을까? 너무 극단적인 가정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힘들다 싶으면 포기하고, 어느 정도 자기 합리화하면서 부모형제 원망이나 하는 못난이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내 2세에게 그대로 대물림해 주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 누군가 목표 앞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고 결정하기를 바라본다.
나는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워 full swing 했는가?
그래서 지금 목표를 변경한다거나 멈춘다고 해도 후회가 없는가?
끈기와 의지를 논하며 포기는 정당화되지 못할 것이라고 한창 협박을 늘어놓고 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럽에서 가장 명망 높은 대학 중 한 곳의 종신 교수직을 박차고 나갔던 철학자 니체의 고통에 관한 견해를 짧게 담은 책의 문구가 떠오른다.
니체는 고통을 좋은 삶의 구성 요소로, 배움의 수단으로 여겼다. "오로지 고통만이 지식으로 이어진다." 니체는 말했다. 고통은 청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답해야 하는 부름이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중에서...
어쩌면 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과거 겪었던 수많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나는 더욱 단단해지고 스스로 내 인생을 더욱더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시련을 이겨내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달성 과정에서 주어진 고통 그리고 그 고통에서 오는 괴로움과 아픔을 이겨내는 끈기와 의지 모두 좋은 삶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