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이직인가?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이륙 후 안전벨트 착용 표시등이 꺼지면 조용히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켠다. 시간이 흘러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을 때 즈음 종료 버튼을 클릭하고 스튜어디스에게 레드 와인을 한 잔 부탁해 입을 적신다.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고, 열정적으로 일한 대가는 달콤할 것이다... 출장 후 첫 출근,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나는 소속된 부서에서도 인정받는 구성원으로서 항상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어느 드라마에서 본듯한 이 장면은 우습게도 대학 시절 막연히 꿈꿔왔던 내 미래의 모습이다. 언제부터 이런 상상을 하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세계 곳곳을 다니며 능력을 펼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었다.
2007년 UAE 두바이를 시작으로 2013년까지 주로 중동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령/파견/출장 등의 형식으로 장기 근무를 했던 나는, 2014년부터 약 4년 간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대형 발전 플랜트 건설사로 이직하여 가족들과 함께 스페인 남부 도시 세비야에서 지냈다.
2019년부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현지 건설사에 근무 중이며, 회사에서 마련해 준 대형 아파트에서 가족과 함께 꽤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 있다.
초임 연봉 2천만 원 후반에서 입사한 지 만 9년이 되던 2014년 1억 대 연봉에 진입했으며, 2018년 잠시 한국으로 복귀했던 1년가량의 기간을 제외하고 꾸준히 그보다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 물론, 외국계 회사에서 롱런하는 일이 쉬는 것은 아니나 그간 다양한 곳에서 어려움을 딛고 꿋꿋이 걸어왔던 지난 시간 그리고 경험이 백지수표까지는 아닐지라도 보증수표 정도는 되리라.
내가 이렇게 비교적 구체적인 처우를 운운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노력의 대가가 가져다준 삶의 반전을 더욱 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어디에선가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아이들, 청소년 그리고 사회 초년생들에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꿈을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간절함이 있어서 이다.
요즘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단기간에 성공한 개인 사업가 또는 유투버, 투자한 가상화폐나 주식에서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스스로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고민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연관된 아이디어 몇 가지이고, 그나마 이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여유롭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일수였다. 투자는 또 어떠했는가? 여유가 조금 있을 때 큰돈은 아니지만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해(속된 말로 돈을 좀 태워) 보았으나, '잡으려 하는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돈'이며 '버는 사람은 다 따로 있다.'는 값진 교훈들을 재확인하고 스스로 퇴장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계속된 실패를 옆에서 지켜보며 자란 탓인지 나도 모르게 리스크가 적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다고 해서 행복이 뒤따르는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경험에서 비롯된 나의 대답이다. 담당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실수가 늘어나고 관련자들과 마찰을 빚는다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터는 지옥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반대로, 안정적인 직장에서 내가 잘할 수 있으면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을 때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을 지위와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았을 경우,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감, 만족감 등을 느낄 수 있을 것인데... 이런 직장에서 긴 시간을 근무하게 된다면 직장인으로서 꽤나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지 싶다. 허나, 멀쩡하던 회사가 조금 빡빡하게 느껴지더니 갖가지 소문이 난무하고 어느 순간 법정관리 신청 또는 파산을 해 모두 나 앉게 생겼다면 어찌해야 할까?
우리에게 지옥같이 느껴지는 직장에서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허비할 만큼 인생은 길지 않다. 또한, 애정을 가지고 몸 담았던 회사의 추락을 지켜보면서 그대로 주저앉기에 여전히 저 밖에 새로운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상황에 봉착하였을 때, 나는 이직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지인들 사이에서 '이직의 신(神)'이라 불리며 걸어왔던 지난 17년 간의 경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한다. 부디 앞으로 적어 내려갈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도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