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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May 22. 2023

문 주변을 서성댄 자

레이 만자렉 (도어스) 1939.2.12 – 2013.5.20

  짐 모리슨이 없는 도어스를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나머지 멤버들의 사운드가 빠진 짐의 보컬 역시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레이 만자렉(Ray Manzarek)은 그 사운드의 키를 쥔 인물이었다. 베이시스트가 따로 없는 밴드에서 키보드 주자인 그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다. 그는 왼손으로 베이스 리듬을, 오른손으로는 멜로디를 연주하며 사운드의 빈틈을 채웠다. 그가 사용한 장비는 펜더 로즈와 복스 콘티넨탈이었다. 복스는 당시 하몬드 오르간의 대안으로 쓰이던 악기다.


Jan Persson/Redferns/Getty

  레이의 건반은 도어스 특유의 음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Waiting for the Sun>이나 <Riders on the Storm>의 도입부는 그의 두 손이 아니면 연출할 수 없는 사운드다. 그것은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인식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레이가 문 주변을 서성거렸다면, 짐 모리슨은 그 문을 아예 부수고 나가버렸다. 짐의 사망 후 남은 자들은 두 장의 앨범을 더 남긴다. 보컬이 떠난 자리에서 레이와 기타리스트 로비 크루거(Robbie Krieger)가 번갈아 노래를 불렀으나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진 못했다. 당연하게도.


  1973년작 ‘The Golden Scarab’은 그나마 도어스의 사운드를 추억할 만한 레이의 솔로 앨범이다. 2000년대에 레이는 로비와 함께 새 멤버들을 꾸려 ‘21세기의 도어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려 했으나 드러머 존 덴스모어(John Densmore)의 반대로 법정소송 끝에 패하고 만다. 사실 이 부분에서 레이에게 크게 실망했다. 노욕이라는 게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씁쓸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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