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성수

24화(최종회) 열네 살 성수

by 왕눈이 누님

댓돌 위에 낯익은 신발 한 켤레가 눈에 들어온다.


성수는 언니 은수를 부르며 냅다 방으로 뛰어들었다.

방안에는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언니 은수가 앉아 있다.

분위기가 무겁다.


일년 전 이맘때 쯤 언니 은수는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 취직을 했고 선생님의 꿈을 그렇게 접었다.

일년만에 마주한 부모님과의 자리에서 언니 은수의 표정은 어른을 닮아 있었다.


엄마는 하던 얘기를 멈추고 저녁을 준비한다며 부엌으로 나가시고

아버지는 담배만 뻐끔대고 천장만 바라보신다.


언니 은수와 성수는 나란히 동네 길을 걸었다.

여느 때 같으면 부엌에 들어가 엄마를 도왔을 언니 은수는 성수의 손을 잡고 구석구석 동네를 돌아다녔다.

굴뚝에서 연기들이 맵게 피어 올랐다.


“성수야, 중학교에 들어가. 배워야지. 배워야 하고 싶을 일은 해.”


무거운 분위기에 오남매는 그렇게 말없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상을 물리자 언니 은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성수는 제가 데리고 올라가서 중학교에 보낼게요. 허락해 주세요”


그 무거움의 실체가 그거였다.

언니 은수의 도발이었다.

꿈이 꺾여버린 언니 은수는 성수의 꿈을 지키려고 내려온 거였다.

언니 은수의 도발은 큰 충격이었다.

언니 은수의 ‘뜯지 않은 봉투’가 가족의 생활비가 아닌 성수에게로 간다는 의미였고,

열네 살 성수도 돈을 벌어 가정에 보태야 할 또 다른 ‘뜯지 않은 봉투’가 아예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부모의 말씀을 한 번도 순종하지 않은 적이 없는 언니 은수는

동생 성수의 날개를 지켜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앞치마로 눈물만 훔치고

아버지는 연신 담뱃대를 놓지 못하고 뻐끔 담배를 피우며 천장만 바라보고 헛기침을 하고

두 살 터울 남철이는 엄마와 아버지 눈치만 살핀다.


눈치없는 아들 한수는 분위기를 못 읽고 갑자기 찬물을 더 얹는다.

“아버지, 나도 서울 갈래요. 나도 서울서 학교 보내줘요.”


막내 두수도 덩달아서 생각없이 칭얼댄다.

“나도 나도 서울서 학교 다닐래요.”

성수의 미래는 실타래처럼 엉키고 또 엉켜버렸다.


매듭을 풀지 못한 채로 누군가는 이불을 걷어차며 잠을 자고

누군가는 뜬 눈으로 날을 새고.

그렇게 새 날을 맞이하였다.


아침상이 차려졌다.


아버지의 계란찜은 온데간데 없고 계란을 멀겋게 풀어 파를 송송 띄운 계란국으로 바뀌어 오남매 국그릇에 담겼다.


딸도 대접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엄마의 마음은 계란국으로 도발했다.


눈이 퀭하게 십리나 들어가 움푹 패인 아버지도 밤새 잠을 설친 모양이다.

멀건 계란국을 휘젓다가 숟가락을 못마땅하게 탁~ 내리친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였다.


“서울로 가자. 아버지가 오며가며 봐둔 일도 있고 서울가서 학교도 다니고 다같이 모여 살자.”


아버지의 뜻 밖의 선언에 걱정과 불안 그리고 기대를 쏟아 내었다.


성수는 안다.


부모님의 선택에 가족이 제일 우선이라는 것을.

가족이 함께라면 두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열네 살 성수는 그렇게 꿈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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