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성수

23화 통지표

by 왕눈이 누님


“정성수.”


통지표를 받았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통지표를 열어볼 수가 없다.


자리에 앉아 한참을 눈을 감고 머릿속을 비웠다.


짝꿍 순진이도, 앞에 앉은 단짝 미숙이도 보지 못하도록 살그마니 통지표를 반쯤만 열어본다.


‘성적. 수, 수, 수, 수, 수’

‘꿈. 맞춤복 디자이너’


성수의 얼굴에 미소가 핀다.


통지표를 활짝 펴서 찬찬히 살펴보고 무심히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순진이도 미숙이도 볼 수 있도록.


“우와~ 정성수. 우리반 1등. 정말 디자이너 될거야?”

순진이의 부러운 목소리에 성수는 마음이 들뜨고


“아버지가 중학교에 보내주신대?”

미숙이의 질문에 갑자기 숨이 확 막힌다.


통지표에 적힌 성수의 꿈. 맞춤복 디자이너.


입학 날 엄마가 손수 떠준 세상에 하나뿐인 분홍색 털스웨터 맞춤복을 입은 뒤 한 번도 그 꿈이 변한 적이 없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언니 은수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병원에 취직하였다.

언니에게서 나는 병원 냄새를 떠올리고 금새 얼굴을 찡그렸다.


‘언니처럼 병원에 취직하지 않을거야.’


주사 맞는 병원은 딱 질색이다.

성수는 갑자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예쁜 옷을 만들거야.’


‘맞춤복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엄마 옷도, 은수언니 옷도 내손으로 멋지게 만들어 줄거야.’


통지표를 가방 깊숙하게 넣은 성수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아 가만히 가슴에 손을 대본다.


집으로 향하는 뚝방길에 올랐다.


살 속 깊이 추위가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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