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의 세상은 네모난 모니터 안에서 시작됩니다.

by 장용철

창밖의 날씨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나갈 일이 없으니까요. 방 안의 시간은 바깥과 다르게 흐릅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게 아니라, 컴퓨터가 켜지고 꺼지는 것으로 하루를 실감합니다.

나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이력서를 쓰고,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은 자석처럼 의자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손가락은 의미 없는 웹서핑만 반복합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질문은 이제 너무 오래되어 메아리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순간, 저는 헤드폰을 낍니다.

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생깁니다. 현실의 소음이 차단되고, 제 재생목록의 첫 곡이 흘러나옵니다. 그 순간, 비로소 저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어떤 날은 얼마 전 끝난 드라마의 OST를 들으며, 주인공이 되어 빗속을 달립니다. 또 어떤 날은 이름 모를 인디 밴드의 노랫말에 기대어, 나 대신 울어주는 목소리에 위로를 받습니다. 현실의 나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지만, 플레이리스트 속의 나는 절절하게 사랑하고, 처절하게 이별하고, 세상을 향해 소리칩니다. 감정이 과잉된 사람처럼, 나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만 겨우 살아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저를 보고 '현실 도피'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이건 도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저만의 생존 방식입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의 늪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으려는 마지막 발버둥입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도록, 아주 작은 감정이라도 계속 흘려보내 주는 일. 저에게는 드라마와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오늘도 저는 현실의 볼륨을 잠시 끄고,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을 재생합니다.

이 노래가 끝나면, 어쩌면, 아주 조금은 다른 내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