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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톤투 Mar 01. 2023

5세 6세 연년생 남매 유치원에 입학하다

드디어 해방. 엄마독립만세.

2018년생. 2019년생.

올해 5세, 6세가 된 연년생 남매 둘이 드디어.. 드디어..

내일 내 품을 떠나 유치원에 입학을 한다.


이 연년생 남매들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집 둘째, 셋째로 13개월 차이인 누나와 남동생이다.

세상에 태어나 한 지붕에서 남매로 만나 단 한시도 단 하루도 서로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 남매.

얼굴 생김새는 달라도 키도 고만고만한 것들이 항상 둘이 붙어 다니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항상 길을 가다 쳐다보고는 "둘이 쌍둥이예요?"하고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난 항상 "아니요~연년생이에요"라고 하루에도 열 번 이상을 대답했던 것 같다. 정말 애들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가면 지나치는 분들마다 물어보셨기에 어쩔 때는 저쪽에서 마주 오는 분들이 애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라도 하면 내가 먼저 "연년생이에요!" 하고 미리 알려드리기도 했다.

혹은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못하고 지나가시며 "둘이 쌍둥인가?" 하는 작은 말소리가 들리면 나는 꼭 큰 목소리로 "연년생이에요~~"하고 궁금증이 해소되시길 바라며 꼭 알려드리곤 했다. 그만큼 쌍둥이 같지는 않은데 쌍둥이 같고 쌍둥이 같은데 쌍둥이는 아닌 것 같은 남매였다. 5, 6세가 된 아이들은 이제 본인들이 나서서 "연년생이에요!"하고 어른들이 쳐다만 보아도 궁금해하시는 줄 알고 미리 말씀드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나서서 연년생이라고 밝힐 때는 그 모습이 우스워서 웃기도 했다.



늬들이 연년생 뜻이나 알간?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고 항상 엄마랑 붙어 다니니

간혹 이상하게 쳐다보시는 분들도 계셨던 것 같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쌍둥이보다 키우기 힘들다는 연년생을 어린이집에 보내지도 않고 엄마가 늘 데리고 다니니 이해불가였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친정식구들도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고 이웃들도 한 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다녀오는  나를 보고 대단하다고 말씀하신다.

나 역시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니 악 소리가 날 정도로 힘들었었던 것 같다. 다시 또 그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기에..

그렇다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이나 되는 애들을 키우며 연년생을 나는 왜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지금껏 내가 키웠던 걸까.

글쎄.. 나는 이 질문을 나에게 던졌던 모든 이들에게 되려 되묻고 싶다. 애를 왜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요? 엄마가 낳았으니 엄마가 키운다는데 그게 이상한 건가요? 흠.. 나는 그랬다. 세 돌까지는 아묻따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내가 엄마니까.

오히려 당연하게 어린이집에 보내야 되는 이 사회분위기가 난 너무 희한하게 느껴질 정도다.


과연 첫째는?

둘째와 터울이 4살 나는 첫째는 30개월에 처음 기관에 보냈다. 첫째 역시 세돌이 지나면 기관에 보내려고 했는데 애가 너무 똘똘해서 무서웠던 것 같다. 이 아이는 지금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감당을 못할 것 같았다. 주변에서도 얘는 이제 엄마가 상대하지 말고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하고 상담을 갔던 어린이집에서도 보통 이 시기에 고집이 생기니 지금 어린이집에 와서 제대로 된 규율을 익혀야 할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때 그게 내 첫 실수였던 것 같다. 아이는 매일 아침마다 원에 가기 싫다고 울었고 무슨 일인지 어린이집만 다녀오면 열이 나고 아팠다. 그때 우리 첫째에게 필요했던 건 어린이집 교구도 놀잇감도 현장체험도 선생님의 관심과 애정도 아닌 바로 나 엄마였다. 그걸 몰랐던 나는 아주 정성을 다해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병을 낫게 해주고 나으면 또 어린이집에를 보냈다. 그러면 어김없이 또 열이 나고 아팠다. 우리 첫째는 한 달에 서너 번씩 꼭 열병을 앓았으니 매주 아팠던 셈이다. 그때는 아이가 면역력이 약해서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그냥 우리 아이는 집에서 엄마와 편하게 뒹굴뒹굴 있으면 아프지 않을 아이였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쉬고 싶을 때 쉬면 아프지 않았을 텐데 어린이집에 가서 하루 일과에 맞춰 활동하는 것이 우리 아이에겐 굉장히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그때는 나도 첫아이 키울 때라 아무것도 몰라 그저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도 사귀고 율동도 배우고 규칙도 배우고 뭐라도 가서 배우고 오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우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이 너무너무 후회가 된다. 평생을 통틀어 엄마랑 단짝으로 엄마랑 하루종일 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때뿐이었는데.

좀 더 크면 또래 친구랑 놀고 싶고 엄마보단 상냥하고 다정한 선생님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엄마랑 놀이터 가는 것보다 유치원에 가서 재밌는 활동을 하는 게 더 즐거울 수 있는데. 아이가 준비가 되고 내가 교육기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보내도 되었는데 그저 남의 말만 듣고 내 기준도 없이  첫째를 양육했던 시절이 많이 후회로 남았다.

또 첫째가 입원도 많이 하고 병치레를 많이 하면서 컸다 보니 이렇게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직장을 다닐 수 없겠다는 생각도 그때 갖게 되었다. 물론 아이를 돌봐주실 시댁이나 친정이 있다면 생각이 달랐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시댁과 친정 모두 코앞에 살지만 모두 일을 하시니 아이를 잠깐이라도 봐달라는 말을 할 수도 맡길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나마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제일 편한 우리 친정엄마를 가장 많이 귀찮게 하고 도움을 받았지만 언젠가부터 왜 나 때문에 항상 우리 엄마까지 힘들어야 하나 싶어 이를 악물고 엄마 도움도 요구하지 않았다.


첫째에 이어 13개월 차이 나는 연년생 남매까지 낳고 ,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지독하게 세 아이를 키워왔던 것 같다. 코로나19가 나의 이런 쭈구리 같은 모성애(?)를 더 징글징글하게 만들어주는데 한몫하기도 했다. 어쩌면 육아에 지치고 미쳐서 아이들을 어린이집 문 앞에 던져두고 왔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실내마스크까지 해제가 된 이 시점에 우리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낼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어제 우리 셋째는 미용실에 가서 파마도 하고 왔다. 어르고 달래도 무조건 떼쓰기와 울며 거부해서 미용실에 가도 겨우 앞머리만 자르고 나올 수 있었는데 유치원에 가니까 멋지게 머리를 하겠다며 무려 파마를 허락했다.




우리 아이들도 이제는 징글징글한 엄마와 잘 떨어질 준비가 된듯하다. 겨우내 기다렸던 유치원에 드디어 내일 간다고 하니 너무 기뻐하며 스스로 서둘러 양치도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워서 자고 있다. 우리 둘째는 나한테 이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엄마! 내일 우리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엄마 늦게 일어나면 안 된다 일찍 일어나야 돼!!"



너무너무 기분이 이상하고 나 역시 설렌다.

드디어 해방이다.

오늘 밤 잠이 오려나 모르겠다.

그냥 밤을 새울까?

와.. 드디어 너희들이 유치원에를 가..

미친다 꺅.

이 어미는 걱정 마라.

우리 이제 잘 헤어지자.


엄마눈에는 울아들 BTS



엄마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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