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접실은 몹시도 고요했다. 돌아다니는 하인 하나 보이질 않았다. 홀로 안락의자에 덩그러니 놓인 여인은 등받이가 있는데도 등을 기대지 않고 팔걸이가 있는데도 팔을 얹지 않았다. 어색함에 어쩔 줄을 몰라 열뜬 두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릴 뿐이었다. 여인의 눈길은 왼쪽의 벽난로에, 정면의 거울에, 무릎 앞에 놓인 원형 테이블과 그 위의 장식품에, 자기 양쪽에 하나씩 놓인 기다란 안락의자들에 차례차례 닿았다. 벽면 여기저기에 걸린 이름 모를 귀족들의 반신 초상들까지 하나하나 쳐다본 후에는, 다시 정면의 거울 속 자신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동안의 적막을 견디어 냈을 때, 이윽고 응접실의 아치문 너머에서 어딘가 부산스러운 발걸음 소리와 두 청년의 목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시는 겁니까?”
“정말 많이 다친 것 같다니까. 먼저 좀 봐 주게. 나는 이 정도면 멀쩡하지 않나.”
“멀쩡하다니요. 옷 좀 보십시오. 핏자국도 지우지 않으시고…….”
여인은 자신의 존재도 의식하지 못한 채 아옹다옹하는 두 남자를 보곤 얼른 두 팔로 팔걸이를 의지해 일어나려 몸을 움직였고, 그러자 두 사람 중 앞서 만났던 남자가 눈치를 채고 큰 걸음으로 성큼 다가와 그녀를 제지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자, 이쪽은 드와이트 콜튼 선생. 내 주치의예요. 외상과 내상 분야에 모두 정통하니, 다친 곳을 잘 봐 줄 거예요.”
드와이트는 옅은 미소로 가볍게 묵례하며 다가와 상처를 살펴도 될지 물었다.
그사이 아직도 남은 술기운과 씨름하고 있던 남자는 여인 오른편의 기다란 안락의자에 풀썩 기대앉아 괴로운 듯 한숨을 크게 한 번 내뱉은 뒤,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하인을 불러 많은 양의 물을 청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하인이 탁자에 큰 주전자와 물 잔을 놓고는 또한 홀연히 사라졌다.
“윽!”
드와이트가 잔뜩 부어오른 발목을 살짝 틀자 여인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자기 발목이 비틀린 듯 놀란 남자가 화다닥 몸을 세워 앉고는 드와이트의 등에 가려진 여인의 발목을 보려고 연신 이쪽저쪽으로 기웃거렸다.
“그것 보게.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잘 걷지도 못하더라니까.”
“전하.”
드와이트가 남자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리며 가만히 그를 불렀고, 여인은 동그래진 눈으로 드와이트를 한 번, 남자를 한 번 쳐다보았다.
“물을 좀 더 드십시오.”
“알겠네…….”
남자는 시무룩한 얼굴로 잔에 담긴 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드와이트는 찬물에 담갔던 발을 수건으로 닦아 준 후 꽤나 꼼꼼히 붕대를 감았다.
“많이 다친 것 같긴 합니다. 뼈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당분간은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요. 사는 곳이 어디입니까?”
“아이니스에 삽니다.”
“이곳 사람이군요. 여기도 아이니스 영지이니 아주 멀진 않겠으나, 이 성은 숲속에 외따로 떨어져 있어 마을까지 걸어가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겁니다.”
“마차로 데려다주면 되지 않겠나?”
남자의 질문에 드와이트가 여인에게 물었다.
“집에 돌아가면 하루 정도 쉴 수 있습니까?”
여인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못하자 드와이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붕대를 잘 고정한 후, 여인의 왼쪽, 남자의 맞은편에 있는 기다란 안락의자에 올라앉았다.
“어리석은 질문이겠지요. 하지만 반드시 하루라도 쉬어야 합니다. 치료 시기를 놓치고 과도하게 움직이면 발목은 고사하고 무릎까지 망가질 수 있어요. 글을 쓸 줄 압니까?”
“네, 선생님.”
“잘됐군요. 그럼 집에 보낼 서신을 쓰세요. 발목을 심하게 다쳐 치료를 받아야 하니 오늘만 여기서 묵겠다고요. 내일까지 환부를 살펴 줄게요. 이곳은 헤즈메리 숲에 있어 헤즈메리 성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잠깐.”
남자가 끼어들었다.
“그보다는 의사 드와이트 콜튼의 진료실에 있다고 쓰는 편이 낫지. 틀린 말도 아니고. 가족들이 이곳이나 나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면 괜한 걱정만 끼칠 거야. 내 말대로 해요. 콜튼 선생의 의원에 있다고 쓰면, 드와이트가 서명하고 소견서도 덧붙여 보내 줄 거예요.”
여인은 선뜻 답하지 못하고 깍지 낀 두 손만 움찔거렸다.
드와이트가 물었다.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까?”
“그게…… 고기 때문에요.”
“고기……요?”
예상치 못했던 답이 황당했는지 드와이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남자는 생각난 것이 있는 듯 무릎을 쳤다.
“아, 가지고 있던 그 고기는 지하 저장실에 잘 보관해 놨어요. 바깥 날씨는 더워도 거긴 시원하고, 염장한 고기라 문제없을 거예요. 그러니 내일 가져가도 괜찮지 않겠어요? 오늘 꼭 가져가야 합니까?”
“감사합니다. 실은…… 화요일은 저녁에 고기를 먹는 날이라서요.”
“화요일 저녁에?”
“네. 화요일은 오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날이거든요.”
“흠…….”
남자는 검지로 입술을 누르고 여인을 빤히 응시하며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출발한다 하더라도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엔 어차피 늦은 시간이에요. 포기하고 다른 걸 먹겠죠. 고기보다도 당신이 늦어지는 걸 염려할 테니 마음이 쓰이는군요.”
조금씩 굳어지는 여인의 얼굴을 본 남자는 조금 더 목소리를 키워 짐짓 명랑하게 말했다.
“아무튼 고기 걱정은 하지 마요. 돼지고기가 당신 발목보다 중요하겠습니까?”
“…….”
여인의 침묵에 당황한 두 남자는 멀거니 서로를 마주 보았지만, 자신의 침묵에 당황한 것은 여인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