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E에게,
나의 그리운 이여,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
콜튼 선생님이 어제도, 그저께도 간수에게 서신을 보내 당신의 안위를 확인했고, 저에게도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해 주셨어요. 당신이 안전하게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다행이에요. 하지만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니 걱정이네요.
상처는 잘 아물고 있나요? 이제 당신 몸에 상처가 생길 일이 더는 없어서 다행이지만, 지금은 콜튼 선생님이 곁에서 치료해 줄 수도 없잖아요. 대신 선생님이 들여보낸 약을 꾸준히 잘 바르세요. 깊은 상처였으니 덧나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오늘 그린 그림은 숲의 문이에요. 우리가 처음 만났고, 늘 만나던 그곳이요. 예전에도 내가 같은 그림을 그렸었는데, 기억나요? 그때 당신이 마음에 든다며 옷에도 똑같이 그려 달라고 졸랐잖아요. 장난인 줄 알고 그려 줬는데 정말 그 옷을 입고 밖에 나갈 줄은 몰랐죠. 그래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죠.
지금 숲에서는 나뭇잎을 다 떨군 나무들이 매일같이 차가운 바람을 견디고 있고, 땅에는 얼어붙은 낙엽들이 잔뜩 오그라들어 나뒹굴고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고요. 자주 그곳을 지나면서도 숲속에까지 들어가지는 못했었는데, 당신이 날 데려가 준 덕분에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됐죠. 지금은 숲길을 혼자 걸을 수밖에 없지만, 당신이 이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함께 걷는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말하자면, 아마도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사건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수사관들이 헤즈메리 성까지 찾아왔어요. 그들이 성 안 곳곳을 뒤졌지만 당연히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조용히 끝났고요. 그 후로는 출입 통제가 해제되어서 나도 수시로 드나들며 어질러진 물건들을 함께 정리했고, 지금은 모든 것이 아주 평온해요. 당신도 신문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너무 고생스럽지 않게 잘 끝났길 바라요.
콜튼 선생님이 오늘 궁으로 떠나면서 저에게 성문 열쇠를 맡기셨어요. 당신의 하인들이 다시 집안일을 살뜰히 돌보고 있다고는 해도, 당신이 하던 일들이 따로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닷새째 마구간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잉그램을 숲으로 데리고 나와 바람을 쐬어 주려고 해요. 그렇게 좁고 어두운 곳에서 꼼짝도 않고 있다간 언젠간 고양이로 변해 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니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 잉그램의 건강은 나에게 맡겨요.
그럼, 또 편지할게요. 아프지 말고 잘 지내야 해요.
당신의 사랑,
E
쿵!
놀란 말들이 요란하게 히힝거리며 들썩였다. 요동치는 마차 안에서 두 사람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다. 젊은 남자는 마차의 창에, 초로의 남자는 젊은 남자의 어깨에 부딪히며 동시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젊은 남자는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잡아 앉았으나 여전히 어딘가 불편한 듯 상처투성이의 불그스름한 얼굴을 찡그렸다. 끙 하고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나이 든 남자가 커튼을 젖히고 고개를 내밀어 창밖의 상황을 살폈다. 그러곤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표정으로 무심히, 약간은 짜증이 난 것도 같이 못마땅하게 대답했다.
“여자입니다.”
“여자? 무슨 여자?”
나이 든 남자는 자기 옷매무새를 고치는 데에 여념이 없어, 젊은 남자의 얼굴은 쳐다도 보지 않고 건조로이 답했다.
“웬 여자가 마차에 치인 모양입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그냥 출발하시지요. 이보게!”
그가 턱 끝을 곧게 들어 올리며 마부를 향해 소리치는 순간, 젊은 남자가 급히 그의 가슴 앞으로 팔을 뻗어 이어질 다음 말을 가로막았다.
“그냥 가다니? 상태를 살펴야지.”
“그저 별 볼 일 없는 계집이 길을 가다 넘어졌을 뿐입니다. 우리 잘못이 아니에요.”
“말은 바로 하게. 길을 가다 넘어진 게 아니라 마차에 치여 넘어졌고, 우리 마차에 치였으니 우리 잘못이지.”
“하지만…….”
“레스터.”
자신을 부르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에, 줄곧 고고하게 내리깔려 있던 레스터의 눈이 소심히 남자를 흘깃거렸다.
“별 볼 일 없는 자네가 나와 입씨름이라도 하려는가?”
내내 발음을 뭉개며 대충 흘려 말하던 남자가 또박또박 따져 묻자 레스터는 꾹 다문 입꼬리를 잔뜩 내린 채 마지못해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용서하십시오.”
레스터가 마차에서 내렸을 때에는 이미 마부가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을 살피고 있었다. 레스터의 뒤를 따라 내린 남자가 여인에게 다가서자 마부가 공손한 자세로 물러났다.
“괜찮습니까?”
여인이 고통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가벼운 부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남자가 무릎을 굽히고 앉자, 여인은 반사적으로 흠칫 몸을 뒤로 젖혔다. 그가 고개를 빼고 다친 발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을 땐, 가까워진 그의 얼굴을 본 여인의 눈동자가 겁을 먹은 듯 빠르게 흔들렸다.
“정말 미안해요.”
곤란한 표정으로 여인의 발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남자는 대답을 재촉하는 대신 사과를 표했다. 맹수와 맞닥뜨린 듯 얼어 있던 여인은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은 것처럼 놀라며 어깨를 움츠리곤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나리. 괜찮습니다.”
“아니,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 한번 일어나 봐요.”
여인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다친 발이 힘을 주지 못해 훅 꺾이고 말았다.
남자는 휘청이는 여인의 팔을 잡았다. 또 한 번 놀란 여인이 팔을 빼려 했지만 그는 팔을 더욱 꽉 붙잡았다.
“걱정 마요. 넘어지지 않게 도우려는 것뿐이니.”
그의 말에 여인의 눈빛에는 미안함과 당혹스러움, 여전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한꺼번에 어렸다.
여인을 일으키며 조금 더 침착해진 어조로 남자가 말했다.
“알아요. 난 취했고, 꼴도 아주 엉망이에요.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여인이 눈을 들어 처음으로 남자를 똑바로 보았고, 그는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며 그녀를 이끌었다.
“그러니 같이 갑시다. 일단 치료를 받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