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지만 원하지 않은 길

How to Retire Early

by 허병상

언제나 바쁜 나는 즐길 자격이 있다. 문제는 즐길 시간조차 없는 점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시골에서 가마니에 벼를 담는 방식을 응용해보자. 벼를 가마니에 가득 담고 나면 지게 작대기 같은 것으로 휘저어준다. 그러면 꽉 찼던 가마니는 거의 2/3 수준으로 쑥 내려간다. 다시 채워 넣고 같은 방식으로 휘저어 준다. 이렇게 두어 번 반복하면 가마니 옆구리가 빵빵하게 찬다. 그런 뒤에도 여전히 벼가 남았다면, 가마니를 바꿔야 한다.

시간을 빵빵하게 사용하면 의외로 많은 여유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바쁘다면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끝없이 바쁘게 살 것인가?


브리즈번에서 인천까지는 10시간 동안 비행기에 묶이게 된다. 10시간이면 꽤 긴 시간이다. 2주 전에는 밤 비행이라서 드라마 4편을 보고, 포도주 한 잔을 마신 뒤 잠을 청해서 그 10시간을 때웠다. 언제나 하는 방식이었다.

돌아가는 편은 아침 출발이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 8시쯤이다. 잠잘 시간은 충분하다.

"그래, 이번에는 비행기 안에서 밀린 일을 하도록 하자."

여러 달 정리해온 '흘깃 본 고대 인도'는 드디어 마지막 정리만 남았다. 비행기 안이라면 충분히 집중할 수 있다.


그렇게 노트북을 펼쳐서 작업에 집중했다.

두어 시간 지났던가? 이런, 노트북의 배터리가 나가 버렸다. 어제 밤새 충전을 했는데…

"노트북도 오래되면 배터리가 늙는다."

'평범한 진리'가 아닌가? 언제나 전원에 연결해서 쓰다 보니 평범한 진리를 잊었을 따름이다.

핸드폰 충전기를 꺼내 이리저리 궁리해 보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5년 넘은 핸드폰은 외출할 때마다 배터리가 문제를 일으킨다. AI가 덜 비싼 핸폰에 깔리자면 최소 1년은 버텨야 되는데... 그래서 내린 선택은 충전기였다. 그렇지만, 노트북에 쓸 일도 있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드라마 5편을 연달아 보고 나니 어느덧 우리나라 하늘에 들어와 있다.

다행히 드라마는 푹 빠질 만큼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원한 일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다섯 시간을 '원하지 않은 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진리: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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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진리: 준비하라!

언제나 바쁜 나는 즐길 자격이 있다. 문제는 즐길 시간조차 없는 점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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