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뒤

하루 한 글 쓰기 (2-11/32/365)

by 허병상

일흔을 넘어서자 죽음이 현실로 느껴졌다. 두려웠다. 그런데 막연히 두려웠다.

죽음의 정체를 찾아 나섰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 뿐. 죽음에 대한 설명이 되어있음 직한 책을 열 몇 권 읽었을까? 의외로 결론은 단순했다.


발견 1. "죽은 뒤의 일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일로 골치를 썩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죽은 뒤의 세상을 알 수 없으니, 죽은 뒤에 일어날 일을 두려워 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애써 잊기로 했다.


그래도 두려웠다. 왜 두려운가?

발견 2. 죽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다. 뇌졸중으로 근 20년을 자리보전하고 누워지낸 사람도 있다. 치매는 또 어떤가? 끔찍하다. 더 끔찍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점도 간단히 대답이 나왔다. 그저 잘 먹고, 잘 싸도록 노력하는 것 말고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미 답을 얻었으니, 문제는 내가 죽는다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다.

내가 죽으면 내 아내가 가장 슬퍼할 것이다. 나는 아내와 서로가 생활의 일부분이다. 이미 50년을 넘겨서 함께 살았다. 동남아 관광을 가면 오랫동안 붙어서 크다 보니 몸통 두 개가 붙어서 하나로 보이는 나무를 볼 수 있다. 반 백 년을 찧고 까불며 뒤엉켜서 살다 보니 이제는 거의 한 통속이 되었다. 그렇게 살다가 한 쪽이 갑자기 찢겨져 나갔다고 생각해 보라. 뺨에 난 솜털이 뽀송뽀송할 때 시집을 와서 내 뒷목만 움켜지고 살았는데… 두렵고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일에 대한 대책 역시 명백하다. 아내보다 너무 일찍 죽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역시 같은 해답이다. 잘 먹고 잘 싸는 것 말고 따로 대책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드디어 잘 먹고 잘 싸는 것 말고 따로 대책이 필요한 일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나는 세 딸들 내외와 여섯 손자들이 모범으로 삼을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내 할아버지가 내게 그렇듯이 말이다.

내 할아버지는 내가 평생 간직해온 교훈을 남기셨다.

"양반이 따로 있지 않고, 행실이 양반다워야 양반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

1879년 생이신 할아버지는 선비이자 농부이고 고을의 어른이셨다.


큰 손녀가 초2였을 때 담임선생님이 숙제를 내셨다. "할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이지?"

아이의 답은 이랬다.

"우리 할아버지는 농부에 악사(樂士)입니다." 나는 이 비유를 애호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고 싶다.

"우리 할아버지는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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