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의 자연과학적 해석

하루 한 글 쓰기 (2-10/31/365)

by 허병상

제목: 공(空)의 자연과학적 해석


오늘 주어진 글 주제:

글을 읽고 필사한 내용 중에서 마음에 드는 한 두 문장을 뽑아서, 그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 보세요.

내가 고른 제목: 공(空)의 의미

(선정 배경) 금년들어 꽤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해는 고사하고 기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중요한 내용을 요약한 메모가 남았으므로 앞으로 몇 달 동안 요약한 것들을 다시 읽어야 겠다. (책값을 아끼자!) 또 글쓰기 모임에서 주어진 그날의 글제목을 기준해서 다소간의 내 생각을 가미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논리의 전개 또한 매끄럽지 못할 수 있다. 이 점, 읽는 분들의 이해를 바란다.


(본문)

불교에서는 우리가 일상으로 대하고 있는 세상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으며, 그래서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모든 것이 무(無)요 공(空)이라는 말의 본 뜻이다. 또, 무아(無我, '나'가 없다)라고 한다. 모두 같은 뜻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 삼라만상(一切, loca)의 실상(實相)을 바로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바로 부처의 경지이다.


이상은 '공(空)'을 설명하는 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있고,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있다고 인식하는' 우리의 인식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부처님의 말씀이 틀린 것인가?


『중론』에서는 "여러 요소가 모여서 이루어진 복합적 사물, 즉 모래 더미나 숲과 마찬가지로 그 이름에 해당하는 실제를 지니지 못하므로 명칭으로서 있는 것'을 가유(假有)로 정의한다. (『중관 사상의 이해』 남수현 49~51)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는 이런 것들이 "인연 따라 있다(因緣所記)"라고 설명한다.

'의자'가 여러가지 재료가 모여서 의자로 불리지만 분해하고 보면, 의자라는 것은 어느 곳에도 찾을 수 없다. 또 못이나 나무 조각 조차도 개별의 원소, 혹은 미립자, 혹은 더 작은 무엇으로 분해되므로 실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 아름아움은 지극히 유한하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은 인연으로 이합집산하는 것이지, 실제 존재(實有)하는 것은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 가운데 가장 핵심되는 내용을 거칠지만 소개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런 말씀을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무튼' 우리 눈에 지금 현재 보이는 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책 『무의식은 나를 어떻게 설계하는가?』 (데이비드 이글만 지음, 김승욱 옮김)에서는 이와 같이 어려운 공(空)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일말의 단서를 제공한다.


사례 1:

"남자들에게 여자들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며 얼마나 매력적인지 점수를 매겨보라고 한 실험이 있었다. 20×25센티미터 크기의 사진 속에서 여자들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거나, 앞모습이 4분의 3쯤 보이는 각도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여자들의 눈동자를 실제보다 더 확대한 사진이 절반 섞여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눈동자가 커진 여자들에게 일관되게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쪽 사진보다 이쪽 사진의 눈동자가 2밀리미터 더 크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도 콕 집어낼 수 없는 이유로 특정한 여자에게 더 마음이 끌렸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왜, 어떻게, 그 여인을 선택하게 하였을까?

"대체로 접근이 불가능한 뇌의 작용 중에, 여성의 팽창된 눈동자가 성적인 흥분 및 준비 상태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뭔가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뇌는 이 사실을 아는데, 실험에 참가한 남자들은 몰랐다. 적어도 명백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이라는 개념과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수천만 년 동안 자연선택을 거치며 조형된 프로그램과 단단히 연결되어 조종당하고 있음을 몰랐을 것이다. 가장 매력적인 여성을 고를 때 그들은 선택의 주체가 사실은 세대를 거치며 뇌의 회로에 깊이 각인된 성공적인 프로그램이 선택의 주체였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P.10)


이와 같이 우리의 판단은 생명이 생겼다는 35억 년 이래 얽힌 인연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사례 2:

뇌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에는 옆으로 물러나 있는 편이 최선일 때가 대부분이다. 의식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세세한 부분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피아노 건반에서 손가락을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곡을 잘 연주할 수 없게 된다. (중략)

의식은 보통 해당 정보를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된다. 야구공을 방망이로 때리는 일을 예로 들어보자. 1974년 8월 20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사이의 경기에서 놀런 라이언은 시속 100.9마일(161.44킬로미터, 초속 44.7 미터)의 강속구를 던졌다고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이 속도로 계산해보면, 라이언이 던진 공이 투수 마운드에서 18.44미터 떨어진 홈플레이트까지 0.4초 만에 날아왔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여기서 놀라운 점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 현상을 인식하는 데에는 약 0.5초가 걸린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즉, 타자의 의식이 공을 인식하기에는 공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뜻이다.

정교한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의식이 그 동작을 인식할 필요는 없다. 나뭇가지가 부러져 내 쪽으로 날아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전에 내가 그 가지를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것, 전화벨이 울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차렸을 때 몸은 이미 벌떡 일어서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중략)

의식은 뇌에서 일어나는 일의 중심에 있지 않다.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속삭임을 먼 가장자리에서 듣기만 할 뿐이다.

(같은 책 p.13)


이와 같이 우리의 의식은 의외로 무능하다.

10만 년 전 어느 날, 식량을 찾아 나선 우리 조상 하나가 들판에서 멀리 있는 사자를 발견하였다고 해보자. 정확히 말하면 사자처럼 보이는 물체를 발견하였다. 살아남자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런 기억이 아직도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기억이 오래 축적된 인연들로 쌓여 있고, 그런 인연들을 기초로 우리의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경험해 왔다.
1610년 1월 초 어느 날, 별이 총총한 밤에 토스카나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밤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자신이 고안한 튜브 끝에 한쪽 눈을 대고 있었다. 그 튜브는 물체를 스무 배나 확대해서 보여주는 망원경이었다. 그날 밤 갈릴레이는 목성을 관찰하다가 별 세 개가 목성을 가로지르며 일렬로 늘어선 것을 보았다. (중략)

이 관찰 결과로 천구 이론이 부서졌다. (중략)

갈릴레이의 발견으로 인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천지개벽할 발견을 하게 되었다. 확신과 자기중심주의를 잃고 삼라만상 가운데 일부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은 책 P.13)


그 놀라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철벽같은 뉴톤의 세계가 무너졌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 조차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완전하지 못한 것이 확인 되었다. '절대적 언어'로 불려왔던 수학 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1931년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은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를 발표함으로써 수학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중관학 특강, 김성철)


여전히 "세상만사가 인연소기이고 공(空)"이란 것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생각보다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 불완전성을 뛰어넘는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거기 까지만이라도 동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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